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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고전소설] 강태공전

너무 많다 2007. 11. 3. 17:51
역자주 : 중국의 고대 국가로 하(夏)나라(BC 2207-1766), 은(殷)나라(BC

1765-1122), 주(周)나라(BC 1121-249)를 삼대라고 한다. 은나라는


상(商)나라라고도 부르는데, 20세기에 들어서 은나라의 유적들이 많이 발굴되면서


실제로 존재했었던 나라로 인정되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하나라는 중국 전토를 휩쓸었던 대홍수를 잘 다스렸고, 전국을


9개 주(州)로 나누어 지방 통치 조직을 완성한 하우(夏禹)가 순임금으로부터


양위를 받아서 세운 나라이다. 그로부터 17대째가 되는 걸왕(桀王)은 전제정치로


인하여 중국 백성의 지지를 잃었다. 즉, 웅장한 궁전을 건조하여 천하의 희귀한


보화와 미녀를 모았으며, 궁전 뒤뜰에 주지(酒池)를 만들어 배를 띄워 즐겼고,


장야궁(長夜宮)을 짓고 거기서 남녀 합환의 유흥에 빠졌다.


  이에 하나라의 제후국이었던 은(殷)나라의 탕왕(湯王)이 하나라의 걸왕을


토벌하고 은왕조를 세웠다. 즉, 은왕조의 개조(開祖)인 탕왕(湯王 : 天乙)은


백성의 요망에 따라 현상(賢相) 이윤(伊尹) 등의 도움을 받아 곧 걸왕을


명조(鳴條)에서 격파하여 패사시켰다. 그리고 박(화북 지방)에 도읍하여 국호를


상(商)이라 정하여, 제도와 전례를 정비하였다.


  은왕조는 중국 북부 대초원의 중심에 위치하여 북쪽으로 현재의 산둥성(山東省)


서쪽으로 현재의 후난성(湖南省)까지 통치했다.


  은나라 탕왕으로부터 29대인 주왕(무을)은 달기라는 미인에 빠져서 학정을


일삼았다. 한편 은나라의 제후국으로 은나라 서쪽인 산시성에 자리 잡고 있던


주나라의 문왕은 태공망 강상을 맞이하여 부강하게 되었다. 문왕이 대를 이은


무왕은 은나라 주왕의 대군을 현재의 허난성(河南省) 목야(牧野)의 싸움에서


무찌르고 은의 수도에 입성하여, 주왕을 죽이고 은왕조에 대신하여 주왕조를


일으켰다.


  태공망은 주나라 문왕과 무왕을 도와서 은나라를 토벌하고 주왕조를 일으킨


명재상이다.


 


 


  해설 : 작자, 연대 미상의 고전소설이다.


  2권 2책의 국문경판방각본이 서강대학교 도서관에 있으며, 1책으로 된


국문필사본 3종이 고려대학교 도서관과 서울대학교 도서관 가람문고 등에 있다.


국문활자본으로는 1920년에 나온 대창서원본(大昌書院本)을 비롯하여


보급서관(普及書館) 등에서 간행된 것들이 전한다.


 


 


  화설 은나라 말에 동해 허주 땅에 한 어진 선비가 있었으니 성은 강이요,


이름은 상(尙)이요, 자는 자아요, 별호는 태공(太公)이라. 일찍이 큰


도량(度量)이 있어 산중에 살면서 학업을 힘쓰더니 한 도인(道人)이 와 자아더러


말하기를, "나는 곤륜산(崑崙山) 옥허동 원시 천존(天尊)이라. 너는 나와 속세


연분이 있으매 내 제자가 되어 도를 배움이 어떠하냐?"


  자아가 두 번 절하고 답하기를, "이는 소생의 평생 소원이로소이다."하니


천존이 입으로 기운을 토하여 한 떼 구름을 만들어 강상을 태워 순식간에


옥허동에 이르니라. 자아가 살펴보니 경궁요대(瓊宮瑤臺)의 장려함이 인간


세상에서 보던 바 아니라. 자아가 머물며 현묘(玄妙)한 도학을 닦으니 하늘과


땅의 이치를 살피는 법과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평안케 하는 방도를 깨닫게


되니라.


  하루는 천존이 팔보(八寶) 온광(溫光) 좌상에 앉으시고 백학동자를 명하여


말하기를, "네 사숙 강상을 부르라."하니 백학동자가 도원에 가 자아를 청하여


말하기를, "사부님, 노야께서 부르시더이다."


  자아가 급히 보전 앞에 나아가 절하고 엎드리니 천존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곤륜산에 올라온 지 몇 해나 되었느뇨?"


  자아가 대답하기를, "제자가 서른둘에 올라와 이제 일흔둘이 되었나이다."


  천존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40년 공부가 때를 만났도다. 이제 은왕이


무도(無道)하여 그 운수가 다하고 주나라가 장차 흥하리니, 너는 산에서 내려가


주를 도와 도탄(塗炭)에 든 창생(蒼生)을 구하고 몸이 장상(將相)이 되어 인간


부귀를 받으라."


  자아가 아뢰기를, "제자는 세상의 부귀에 뜻이 없삽고 다만 큰 도를 깨닫기가


원이로소이다."


  천존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운명이 이러하니 어기지 말고 바삐 하산하라."하니


자아가 연연히 떠나지 아니하거늘 남극 선옹이 말하기를, "자아가 이런 기회를


만나기 어렵고 주어진 때를 놓쳐서는 안 될 것인데 하물며 하늘의 운수가 이미


정하여 있으니 도망하기 어려운지라. 이제 비록 산에서 내려가더라도 네가 성공한


후 자연 산으로 올라올 날이 있으리라."하니 자아가 마지못하여 행장(行裝)을


수습하여 천존께 하직하고 벗들을 이별하고 옥허동을 떠나 산에서 내려와


생각하기를, '나의 부모님과 형제와 자녀가 없으니 장차 어디로 향하리오? 숲을


잃은 새가 한 가지 깃들일 곳이 없음 같도다.'하고 주저하다가 문득 생각하기를,


'내 결의형제(結義兄弟)한 송이인을 찾아 의탁하리라.'하고 토둔법(土遁法)을


행하여 조가 남문 35리 송씨네 동네에 이르니 문 앞에 푸른 버들이 드리웠거늘


자아가 탄식하기를, "풍광(風光)은 의구(依舊)하나 인사(人事)는 예 같지


못하다."하고 나아가 문을 두드리니 송이인이 나와 크게 기뻐하며 말하기를,


"아우야, 40년 동안이나 소식이 없더니 그 사이 어디 가 있었더뇨?"


  자아가 곤륜산에 있던 연유를 고하니 이인이 붙들고 후당(後堂)에 들어가


종일토록 술 먹다가 묻기를, "아우는 도술을 배웠으니 성현의 일을 알지라.


사람의 죄 3,000가지 중에 자식이 없는 것이 가장 큰지라. 아우는 나이가 많도록


장가를 들지 못하였으니 내 아우를 위하여 중매하리라."


  자아가 대답하기를, "내 나이 70여 세라. 어찌 아내를 얻으리요?"


  이인이 말하기를, "그대 나이 많으나 자식이 없으면 강씨 후사(後嗣)를 어찌


하리오?"


  자아가 손을 내저으며 말하기를, "이 일은 차차 의논하사이다."하고 두 사람이


늦도록 술 먹고 잠자리에 드니라.


 


  이튿날 이인이 마씨네 동네에 가 마원외를 보고 말하기를, "제가 댁의 따님을


중매하려 왔나이다."하니 마원외가 묻기를, "어떤 사람인고?"하니 이인이


답하기를, "동해 허주 사람으로서 성은 강이요, 이름은 상이요, 자는 자아인데


저와 같은 동네에 있으며 당세에 인걸이옵니다."


  원외가 크게 기뻐하며 말하기를, "자네의 말이 그릇될 리 있겠는가? 곧 혼인을


이루게 하겠네."하니 이인이 백금 40냥을 폐물(幣物)로 드리고 돌아와 자아더러


말하기를, "내 아우를 위하여 정혼하고 왔노라."


  자아가 묻기를, "뉘 집 딸인지요?"


  이인이 답하기를, "나의 아저씨뻘 되는 마홍의 딸이라. 재주와 용모가 아울러


갖추었기로 아우를 위하여 하였으니 속히 좋은 날을 가려 인연을 맺도록 하라."


  자아가 사례하고 택일하여 혼인하니 이 때 마씨 나이 18세러라.


 


  자아가 마씨를 맞아들인 뒤에도 매양 곤륜산에서 큰 도를 이루지 못함을 한하여


탄식으로 세월을 보내더니, 마씨가 묻기를, "낭군은 무슨 일로 근심하시는지요?"


  자아가 대답하기를, "내 송형의 집에 있으면서 한갓 의식만 허비하는 것이 편치


않기 때문이요."


  마씨가 말하기를, "어떻든 돈을 벌 궁리나 하여 보소서."


  자아가 말하기를, "내 본래 아무 것도 모르되 산에 있을 제 다만 대광주리


엮기를 배웠지요."하니 마씨가 말하기를, "내 들으니 짚신을 삼아도 한 달에 수십


냥씩 번다 하니 이제 대광주리를 만들면 매달 백금은 얻을 것이니 뒷동산에


대나무를 베여 광주리를 엮어 서울 가 팔으소서."


  자아가 광주리를 엮어 지고 서울 성안으로 가서 종일 다녔으나 한 개도 못 팔고


날이 저물매 집에 돌아와 마씨더러 말하기를, "내 집에 한가히 있는 것을 밉게


여겨 광주리를 팔라고 하는가? 종일 다녔어도 한 개도 팔지 못하고 배가 고프고


어깨와 허리가 아파 못 다니겠소."하며 광주리를 땅에다 팽개치니 마씨가


말하기를, "이것이 사람마다 사용하는 그릇인데 잘 다니며 팔지 못하고 도리어


나를 원망하시오?"하고 서로 다투고 있으니 이인이 급히 나와 말하기를, "이 무슨


일로 부부가 다투는가?"


  자아가 광주리 팔러 다니던 일을 고하니 이인이 만류하기를, "그대 부부 식구가


수십 명이라도 내가 먹여 살릴 것이니 다투지 말라."


  하니 마씨가 말하기를, "아주버님의 말씀이야 좋은 뜻이지만 앞으로 우리


부부는 손을 묶어 놓고 굶주려 죽고 말겠어요."하니 이인이 말하기를, "제수씨,


이것이 무슨 말이요? 내 집에 밀이 많이 있으니 내일부터 국수를 만들어 팔면


광주리보다는 나을 게 아니겠소."하고 자아를 이끌고 후당에 가 술을 권하여


위로하더라.


 


  이튿날 자아가 국수를 만들어 지고 서울로 들어가 사대문 안으로 두루 다니되


한 사람도 묻지도 아니하거늘 도로 남문으로 나오니 해는 저물고 어깨와 허리가


아파 국수를 내려놓고 쉬고 있더라. 이 때 동남 제후가 다 반란을 일으켜 무성왕


황비호가 군사를 조련하고 오더니 군사가 다 곤핍(困乏)한 중에 국수를 보고


자아더러 묻기를, "우리가 날이 저물도록 전쟁 훈련을 하고 돌아오느라고


목마르고 배고픔이 심하니 한 그릇씩 먹어야겠소."하기에 자아가 저들의


배고파함을 보고 마지못하여 국수를 주었더니 문득 하늘에서 광풍(狂風)이 일어나


티끌이 자옥하였다.


  자아가 말하기를, "음식에 먼지가 드니 그대들은 그만 먹고 가시오."하니


그놈들이 성을 내며 국수 그릇을 뒤집으니 자아의 온 몸에 국수가 덮였더라.


  자아가 저 놈들의 성냄을 두려워 겨우 그릇을 거두어 메고 돌아오니 마씨가


마중 나와 묻기를, "오늘은 이문(利文)을 얼마나 남겼나이까?"


  자아가 꾸짖어 말하기를, "그대 때문에 내가 헛수고만 하였노라."


  마씨가 묻기를, "국수 팔기는 쉽거늘 장사는 잘못하고 도리어 나를


꾸짖으시오?"


  자아가 말하기를, "내 성내에 종일 다녔으나 한 그릇도 팔지 못하고 오다가


훈련하는 군사에게 다 잃고 또 광풍을 만나 다 날려갔으니, 이는 도무지 그대


같은 천한 사람에게 당한 봉변이요."하니 마씨가 이 말을 듣고 얼굴색이 변하면서


화를 내며 달려들어 자아의 뺨을 갈기며 말하기를, "네가 장사를 잘못하고 나를


원망하느냐? 송씨 아주버님이 저런 밥통을 천하 도인이라 하여 나의 평생을


그르게 하였도다."


  자아가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천한 계집이 어찌 감히 대장부를


능욕하느냐?"하고 두 사람이 어울려 한 뭉치가 되어 구르거늘 송이인과 그 처


손부인이 급히 나와 말리며 묻기를, "이 무슨 일로 이렇게 싸우는가?"


  자아가 노한 일을 말하니 이인이 웃으며 말하기를, "그 국수를 팔아도 값이


많지 아니하니 싸우기를 그치고 술이나 먹자."하고 자아의 손을 이끌고 후당에


들어가 술을 권하니 자아가 절하며 말하기를, "형께서 어여삐 여김을 받아 여러


번 장사를 하였으되 다 잘못되니 어찌 부끄럽지 아니리오? 원컨대 장사하는


묘리(妙理)를 가르쳐 주소서."하니 이인이 자아의 근심함을 보고 미안히 여겨


이르기를, "요사이 성중에 술집이 많이 있으니 나를 따라가면 술과 밥을 많이


팔리라."하고 이튿날 술과 밥을 많이 장만하여 자아를 주어 데리고 성내에 들어가


전(廛)을 벌이고 앉았으나 사람들이 다 다른 전에서 사 먹고 자아에게는 한


사람도 아니 오거늘, 이인이 자아더러 말하기를, "이 곳이 깊숙하여 사람이 아니


오는가 싶으니 저 큰길가에 가 팔아 보라."하고 들어가거늘 자아가 술과 밥을


가지고 길가에 벌이고 앉았으나 또 한 사람도 아니 와 사 먹더라.


  그런데 홀연 여러 군사가 달려들어 술과 밥을 제 것 먹듯 하거늘 자아가


어이없어 바라보니 전날 국수 탈취하여 먹던 무성왕의 군사들이 훈련하고


옴이러라. 자아가 가련히 빈 그릇만 메고 들어와 이인을 보니 이인이 위로하기를,


"옛글에 일렀으되 '황하수(黃河水)도 맑을 때 있다.' 하니 사람이 운수 열이면


어찌 좋을 날이 없으리오? 후일 반드시 귀할 날이 있으리라."하고 또 은자(銀子)


50냥을 주며 말하기를, "이 은자를 가지고 우마장(牛馬場)에 가 우마와 양과


돼지를 사 오라."하니 자아가 우마장에 가 우양을 몰고 오더니, 이 때 은왕이


무도하여 달기(?己)의 말만 듣고 사람을 살해하매 하늘이 재앙을 나리와


100년이나 가무니 조정에서 관원을 명하여 비를 빌새, 큰 길거리에 차리고 행인을


막고 길을 돌려보내었더라.


  자아가 그 일을 모르고 우양을 몰고 바로 오더니 좌우에서 소리 질러, "저


짐승을 몰고 가는 사람을 잡아오라."하니 자아가 놀라 우양을 버리고 깊은 데


숨었다가 나와 보니 우양이 하나도 없는지라. 찾을 생각을 못 하고 돌아오니


이인이 자아가 빈 몸으로 온 연고를 물으니 자아가 전후 일을 고한대 이인이


위로하기를, "운이 다하면 그렇기 쉬우니 염려 말고 술이나 마시고 회포를


풀자."하고 뒤 화원 모란정에 올라가 술을 먹더니 자아가 문득 바라보며


생각하기를, '서편 언덕에 다섯 간 누각을 지으면 주인의 복록이 무궁하리니


이로써 은혜를 갚으리라.'하고 이인더러 말하기를, "저 언덕에 집을 지으면 금관


옥대가 한 말이 나올 운수 같을 것이니 형은 내 말을 헛되이 듣지 마소서."


  이인이 말하기를, "그 곳에 요괴가 있어 폐를 끼치므로 어려워하노라."


  자아가 말하기를, "요괴는 내 제어하리라."하고 택일하여 역군을 데리고 언덕에


오르니 이 때가 삼경(三更)이더라.


  문득 수풀 가운데서 큰 바람이 일어나며 모래와 돌을 날려 보내며 흉악한


요괴가 소리를 지르며 내달으니 역군들이 놀라 달아나거늘 자아가 진언을 염하고


꾸짖기를, "못된 귀신이 어찌 감히 남의 동산을 앗으리오?"하고 칼을 두르니 문득


공중으로서 뇌성벽력이 일어나 요괴를 쫓으니 다섯 요괴가 땅에 엎디어


애걸하기를, "저희들은 상선(上仙)이 강림하신 줄 모르고 자리를 범하였으니


잔명을 살려 주소서."했다.


  자아가 칼을 들고 꾸짖어 말하기를, "너는 다시 이 곳에 있지 말고 기산(箕山)


중에 가 있으면 훗날 너희를 부릴 때가 있으리니 다시 인간에 장난하지


말라."하자, 요괴가 하직하고 기산으로 가니라.


  자아가 일꾼을 불러 작업을 하는데 이 때 마씨가 손부인과 더불어 작업하는


것을 구경하러 오다가 대풍이 일며 요괴가 내닫더니 자아가 도술로 쓸어버림을


보고 크게 기뻐하여 손부인을 돌아보며 말하기를, "우리 낭군의 신기함을 알지


못하였더니 오늘날 능히 요괴를 제어하니 곤륜산에서 도술을 많이 배워


계시도다."하고 의기양양하더라.


  이인도 오다가 요괴의 형상과 우렛소리에 놀라 깊은 구렁에 숨었다가 정신을


차려 나와 보니 그 처 손부인과 마씨가 더불어 자아와 문답함을 보고 묻기를,


"아우는 아까 어찌 요괴를 제어하였느뇨?"


  자아가 전후수말을 이른대 이인이 말하기를, "우리가 반년을 같이 있어도 이런


도술 있음을 몰랐도다."


  무수히 칭찬하고 작업을 마친 후 집에 돌아와 자아더러 말하기를, "아우는


그러한 신기한 도술을 배웠으면 사람의 길흉화복(吉凶禍福)도 알지니 서울로 가


복술(卜術)을 팔면 가산이 넉넉하리라."


  자아가 대답하기를, "어찌 낱낱이 맞히리오마는 시험하여 보사이다."했다.


 


  이인이 즉시 성중에 들어가 집을 정하고 자아를 청하여 복술로 이름을 명관이라


하니 과연 많은 사람들이 와 길흉을 물으니 전후사를 신통히 맞추더라.


  하루는 한 나무꾼이 나무를 지고 와 묻기를, "선생이 영험하시다 하니 내 이


나무를 지고 어디로 가면 잘 팔리요?"


  자아가 이윽히 보다가 이르되, "오늘 그대는 먹을 복이 있나니 이러이러한


곳으로 가면 길가 버드나무 아래 노인이 섰다가 나무를 사자하여 데리고 가면


술과 음식을 배불리 먹고 높은 값을 받으리라."하니 곁에 사람이 다 헛되이


여기고 나무꾼도 믿지 아니하고 나무를 지고 가더니 문득 보니 버드나무 아래


과연 한 노인이 서서 불러 말하기를, "저 나무 지고 가는 사람은 이리 와


팔라."하거늘 나무꾼이 나아가니 노인이 말하기를, "내 나무를 사려고 이 곳에서


기다리되 살 만한 나무가 없기로 도로 가려 하더니 그대를 만났으니 어찌 값을


헤아리리오? 내 집으로 가자."하고 데리고 집에 돌아와 노인이 안으로 들어가거늘


나무꾼이 나무를 놓고 앉아서 기다리더니 이윽고 한 동자가 술과 음식을 내어다


주며 말하기를, "우리 나으리께서 그대더러 이 술과 음식을 먹고 기다리라


하더이다."하거늘 나무꾼이 감탄하기를, "강선생은 과연 신인(神人)이로다."하고


술과 음식을 포식하고 앉았더니 이윽고 노인이 나와 돈을 주며 말하기를, "값이


비록 적지만 팔고 가라."하거늘 돈을 받아보니 극진한 높은 값이거늘 노인에게


사례하고 바로 자아에게로 오니 자아가 웃으며 말하기를, "내 점이 어떠 하뇨?"


  나무꾼이 머리를 조아리며 말하기를, "선생은 진실로 신인이라. 원컨대 제자가


되어 높은 도술을 배우고자 하나이다."하고 나무 판 돈을 드리거늘 자아가 받지


아니하니라.


 


  이러구러 거룩한 소문을 듣고 각기 돈을 차고 와 신수를 묻거늘 자아가 아니


맞추는 것이 없으매 사람이 구름 모이 듯하여 반 년 만에 돈이 30만 관에


이른지라. 이인 부처와 마씨가 기뻐하며 말하기를, "이 사람은 진실로 신인이라.


우리 어찌 미치리오?"하더라.


  이때 헌원묘를 지키던 옥석비파 요정이 은왕의 궁중 일을 탐지하고 오다가 남문


안에 사람이 많이 모여 자아에게 신수(身數)를 묻거늘 몸을 변하여 젊은 여자가


되어 자아의 앞에 나아가 가로되, "원컨대 선생은 나의 신수를 점복(占卜)하여


주소서."


  자아가 살펴보니 용모와 음성이 틀림없는 요괴라. '내 이 요괴를 없이하여


사람의 해를 덜리라.'하고 그 여자더러 말하기를, "그대 신수도 보려니와 먼저


손금을 보리라."하니 비파가 그 계교를 모르고 한 손을 내밀거늘 자아가 그 손을


잡고 말하기를, "네 어찌 나를 속이려 하느냐?"


  비파가 그 계교에 빠진 줄 알고 겁내며 말하기를, "나는 젊은 여자이거늘


선생이 내 손을 어찌 놓지 아니 하느뇨?"


  좌우에 있는 여러 사람이 이르되, "강선생은 나이 많은 어른이라 어찌 젊은


여자를 희롱하느뇨?"


  자아가 말하기를, "여러분은 여러 말 말라. 내 어찌 예의를 모르고 무례하리오?


내 이 요괴를 죽여 만민의 후환을 덜려 하노라."


  여러 사람들이 일시에 소리하여 말하기를, "이 여자는 분명 사람이라. 선생이


어찌 요괴라 하느뇨?"


  자아가 생각하되, '이 요괴를 살려 보내면 후환이 되리니 죽여 없이


하리라.'하고 벼룻돌을 집어 요괴의 대골을 때리니 피가 솟아나며 요괴가 죽으니,


자아가 생각하되, '이 요괴가 거짓으로 죽었으니 놓아 주면 반드시


달아나리라.'하고 요괴의 손을 놓지 아니하고 여러 사람들을 대하여 말하기를,


"여러분은 놀라지 말고 내 요괴 처치함을 보라."하니 여러 사람들이 소리하여


말하기를, "강선생이 미색을 탐하여 젊은 여자를 죽였다."하니 순식간에 수천


명이 모였더라.


  마침 승상 비간이 지나가니 사람들이 그 연유를 승상께 고하니 승상이 대로하여


살인자를 잡아오라 하여 묻기를, "네 무슨 연고로 사람을 죽였느냐?"


  자아가 답하기를, "이것이 사람이 아니라 분명한 요괴인 고로 죽여 세상 사람의


화를 면하고자 함이니이다."


  승상이 말하기를, "네 이미 죽였는데 시체를 놓지 않음은 어찌한 연고뇨?"


  자아가 대답하기를, "이것이 천년 묵은 요정이라. 아주 죽은 것이 아니라


거짓으로 죽은 것이기로 놓으면 변화하여 달아날 것이오, 또한 법사로 가더라도


증험을 하겠기로 놓지 않나이다."


  승상이 자아의 헌앙(軒昻)한 풍채와 언어의 유리함을 보고 심중에 의혹하여


여러 사람들을 분부하되, "죄인을 남문으로 대령하라. 내 천자께 아뢰어


처결하리라."하고 남문에 들어가 조회를 청하니 주(紂)가 들어오라 하거늘 승상이


적성루 앞에 나아가 주(紂)에게 아뢰기를, "신이 남문으로 들어오는 길에 늙은


점쟁이 술사(術士)가 젊은 여자를 죽였다 하옵기로 국법을 쓰려 하옵더니 그


술사의 말이 천년 묵은 요괴인 고로 죽였다 하옵기에 신이 사사로이 다스리지


못하여 아뢰나이다."


  주왕이 미처 대답하지 않아서 달기가 여쭙기를, "승상의 말을 들으니 죽은


사람의 근본을 알아 국법을 밝힐 것이니이다."


  주왕이 말하기를, "어처의 말이 옳다."하고 즉시 살인한 사람을 부르니라.


  자아가 한 손으로 요괴의 주검을 잡고 적성루에 이르러 머리를 조아리고 절을


하니 주왕이 말하기를, "네 무슨 일로 사람을 죽였으며, 네 거주와 성명은


무엇이냐?"


  자아가 다시 절하고 아뢰기를, "신의 성명은 강상이옵고 본래 동해 허주 땅에서


살다가 일찍 세상을 하직하옵고 산간에 도인을 따라 음양복술(陰陽卜術)을


배웠기로 남문 안에서 백성의 신수를 점복(占卜)하옵더니 문득 한 계집이 와


신수를 보아달라 하옵기에 신이 보온 즉 사람은 아니요 정녕한 요괴옵기로 세상


사람의 화를 면하고자 하여 벼룻돌로 쳐 죽였나이다."


  주왕이 말하기를, "그 계집의 얼굴이 분명한 사람이거늘 요괴라 하느뇨?"


  자아가 말하기를, "신이 이 요괴의 근본 형상을 보시게 하올 것이니 섶을


주시면 자연 그 본상이 나타나게 하리이다."


  주왕이 좌우를 명하여 섶을 가져오거늘 자아가 그 요괴의 옷을 벗기고 가슴에


부적을 붙여 섶 위에 놓고 불을 지르니 불꽃이 하늘에 자욱하되 그 요괴의 살이


타지 아니하고 살빛이 조금도 변함이 없더라. 주왕이 자아더러 묻기를, "저


불꽃이 저리 성하되 요괴의 살이 타지 아니하니 요괴일시 분명하니 네 수이


본상을 나타내게 하라."


  자아가 소매에서 구슬 셋을 내어 불 속에 던져 불길을 도우니 그 구슬은


일월정기로 나는 불이라 요괴가 어찌 면하리오? 요괴가 일어나며 말하기를, "네,


나와 원수진 일이 없거늘 어찌 나를 불에 태워 죽이느뇨?"하며 소리를 벽력같이


지르고 본상을 나타내니 옥돌로 된 비파였더라.


  주는 기뻐하나 달기는 마음이 미어지는 듯하여 심중에 헤아리기를, '저 강상이


비파의 본상을 드러내니 미구(未久)에 나를 해할지라. 내 이놈을 벼슬을 높이


시켰다가 나중에 죽여 후환을 덜리라.'하고 아뢰기를, "저 옥돌로 된 비파를 올려


첩을 주시면 새 줄을 얹어 곡조를 맞추어 폐하의 뜻을 즐겁게 하리이다. 또한


강상을 봉작하여 그 공을 표하소서."하니 주가 명하여 비파를 올려 달기를 주니,


달기가 회생단(回生丹)을 먹여 제 친구를 삼으니라. 주왕이 강상으로 하태후를


봉하고 사천감으로 삼으시니 강상이 천은을 숙사(肅謝)하고 송이인 집에 돌아와


이인과 마씨로 더불어 즐기고 다시 도성으로 오니라.


 


  각설 이전에 은왕 주왕이 여와씨(女?씨) 사당에 제사지내러 갔다가 여와씨의


화상이 산 사람같이 화용월태(花容月態) 작약(綽約)함을 보고 흠모하여


기롱(譏弄)하는 글을 지어 벽에 붙이고 돌아와 잠을 이루지 못하여 여와씨만


흠모하더라. 이 때 여와씨가 벽에 쓰인 글을 보고 대로하여 말하기를, "이


음학무도(淫虐無道)한 놈을 망하게 하리라."하고 헌원묘를 지키는 요괴 셋을 불러


분부하기를, "너희들이 은왕� 궁중에 들어가 은왕을 미혹케 하여 10년 내에


망하게 하되 생령(生靈)을 상하게 하지는 말라."하니 하나는 구미호요, 하나는


구두치요, 하나는 옥석비파 정녕이라. 세 요괴가 명을 듣고 청풍이 되어 궁중에


들어가 간계를 베풀더라.


  이 때 기주후 소획에게 한 딸이 있으니 이름이 달기라. 주왕이 자색이 있음을


듣고 소획을 불러 후궁을 정하고자 하니 소획이 굳이 사양하다가 못하여 달기를


데리고 서울로 오더니 한 고개에 이르러 날이 저물매 주막에서 쉬고 있었더라.


밤중이 되어 음풍(陰風)이 일며 촛불이 꺼지거늘 소획이 놀라 들어가 보니


시녀들은 다 정신을 잃고 달기는 홀로 평상 아래서 부친을 불러 말하기를, "아까


음풍이 일며 괴이한 소리가 나는 중, 시녀들이 다 꺼꾸러지옵기로 소녀는 평상


아래 숨어 화를 면하였나이다."하니 이는 구미호가 음풍이 되어 경각간(頃刻間)에


달기를 잡아먹고 그 형용과 음성을 본뜬 것인데 그 부친도 알아채지 못했던


것이다.


  주왕이 달기를 맞아 한 번 보고 정신이 표탕(飄蕩)하여 취한듯 미친듯하여


정사를 전폐하고 날마다 적성루에서 잔치하여 즐기며 달기가 말하는 대로


시행하여, 충성스럽고 어진 신하와 백성을 살해하기를 일삼더라.


  누각 아래 수백 길 구렁을 파고 그 속에 뱀 수만 마리를 넣고 궁녀 중에


불합하면 의복을 벗기고 구렁에 던져 뭇 뱀에게 물려 죽게 하여 이름을 만분이라


하고, 또 구리 기둥을 세우고 그 밑에 숯불을 피우고 충간(忠諫)하는 신하가


있으면 그 기둥에 올려 불에 떨어져 죽게 하여 이름을 포락(?烙)이라 하였더라.


달기는 구두치의 이름을 호흐미라 하고, 옥석비파의 이름을 왕귀인이라 하여 제


동무를 삼아 날마다 인명(人命)을 살해하기를 일삼으니 천하가 흉흉하더라.


 


  화설 주왕의 중궁 원비 강황후는 동백후 강환초의 따님이요 강문환의 누이요,


서궁 귀비 황씨는 무성왕 황비호의 누이요, 형경궁 귀비는 양씨라. 세 궁 후비 다


정정현숙하매 주왕이 태평을 누려 우순풍조(雨順風調)하고


국태민안(國泰民安)하더니, 주왕이 달기를 취한 후로 정사가 날로 어지러워 주야


잔치를 배설하고 가무(歌舞)로 세월을 보내며 충량(忠良)을 살해하니 강황후가


탄식하기를, "천자가 황음(荒淫)하고 주색(酒色)에 빠져 만민이 실업하니 이는


난리를 부르는 도라. 내 몸이 황후가 되어 어찌 앉아서 그 망함을 보리요?"


  이에 수선궁에 나아가 주왕께 아뢰기를, "요사이 폐하께서 주색에 빠지셔서


정사를 폐하시니 사직의 위태함이 조석(朝夕)에 있을지라. 바라건대 폐하는 전


허물을 고쳐 간사한 무리를 물리치고 어진 정사를 닦으시면 종사(宗社)에


다행일까 하노이다."하고 환궁하니라.


 


  차설 매달 초하루와 보름이면 각궁 비빈(妃嬪)이 황후에게 조회할새 황귀인과


양귀인이 다 황후를 좌우에 모셨더라. 달기 또한 나아와 인사를 올리거늘


황후께서 자리를 주시고 정색하고 말하기를, "소귀인아, 천자가 매일 가무연락에


빠지셔서 정사를 전폐하시고 충량을 살해하심이 다 네가 임금님의 마음을 미혹케


하고 간하지 아니함이니 네 길이 그러하면 국법을 면치 못하리라."


  달기가 분을 참고 흐느끼며 돌아와 주에게 황후가 나무라던 말을 낱낱이 울며


고하니 주왕이 대로하여, "내 황후를 폐하여 죽이고 그대로 황후를


봉하리라."하니 달기 더욱 교만하여 이를 갈며, "내 천자의 총비(寵妃)거늘


황후가 정궁(正宮) 된 세력을 믿고 나를 이리 욕보이니 내 마땅히 원수를


갚으리라."하고 간신 비중, 우흔과 짜고 계교를 꾸미더라.


 


  차설 주왕이 가마를 타고 수선궁으로 가는 길에 분궁루를 나서는데 한 사람이


보검을 들고 내달으며 크게 외쳐 말하기를, "못난 임금이 무도하여 주색에


빠졌으니 내 황후의 명을 받아 못난 임금을 죽이고 주공으로 임금을


삼으리라."하고 내닫거늘 호위하는 군졸이 달려들어 결박하여 꿇리고 문초한즉


자객의 성명은 강환이라. 동백후 강환초의 장수로 황후의 명을 받아 주왕을


죽이고 강환초로 천자를 삼으려 함이라 하거늘 주왕이 얼굴빛이 변하고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강후가 짐의 본부인으로 어찌 짐을 모역하여 죽이려


하는고?"하고 즉시 명을 내려 황후의 눈을 빼고 두 손을 불로 지져 자결하게 하니


슬프다, 황후 천성이 정정현숙하여 직언(直言)하다가 참형(斬刑)으로 돌아가니


천도가 어찌 무심하리요. 일월(日月)이 빛을 잃고 산천초목이 다 슬퍼하는 것


같더라.


  달기가 또 여쭙기를, "강후의 죽음을 강후 아비 강환초가 알면 필연 군사를


일으켜 걱정을 끼칠 것이니, 이제 한 제후에게 작은 제후 200씩 거느리게


하였으니, 먼저 4 진지의 대제후를 불러 머리를 베어 호령하면 800진의 작은


제후들은 감히 먼저 움직이지 못하리이다."하니 주왕이 말하기를, "어처의 말이


옳다."하고 즉시 조서를 내려 동백후 강환초와 남백후 악숭우와 서백후 희창과


북백후 숭후호를 부를새 사신을 각각 4 곳으로 보내니라.


 


  차설 사신이 서기에 이르니 희창이 천자의 사신을 맞아 사례하고 길을 떠나고자


모친 태강께 하직하니 태강이 말하기를, "네 선천수(先天數)에 7년 액이 있다


하더니 조심하여 다녀오라."


  창이 엎드려 대답하기를, "소자가 비록 7년 액이 있으나 먼저는 흉(凶)하고


뒤에는 길(吉)하오니 염려하실 일이 아니로소이다."하고 절하여 하직하고


떠나니라.


  원래 서백은 부인이 4이요, 비빈이 24이요, 아들이 99이니, 장자는 백읍고요,


차자는 날이니 곧 무왕이라. 급히 서둘러 떠나면서 여러 비빈과 여러 아들과


만조백관을 다 작별할새 10리 장정에서 부자 군신이 눈물 뿌려 이별하였더라.


  떠난 지 여러 날 만에 한 곳에 이르니 급한 비가 담아 붓듯이 오며 뇌성벽력이


천지가 무너지는 듯하매 성한 수풀을 찾아 비를 피하더니 구름이 걷히고 푸른


하늘이 나타나며 장성이 하늘에서 내려오거늘 종자를 명하여 가 찾아오라 하니


종자가 냉소하고 가 찾더니 어린아이 우는 소리가 무덤 곁에서 나거늘 나아가


보니 한 어린아이거늘 안아다가 서백께 드리니 서백이 살펴보니 얼굴은


도화(桃花) 같고 눈은 불빛 같으니 진실로 기남자라. 크게 기뻐하며 말하기를,


"내 아들이 99이니 이제 100 아들을 채우리라."하고 마을을 찾아 부탁하여 기르게


하였다가 돌아올 때 데려가리라 생각하고 마을로 가더니 한 도인이 표연히 말


앞에 와 머리를 숙이고 말하기를, "빈도(貧道)가 제후께 뵈옵니다."


  서백이 황급히 말에서 내려 말하기를, "희창이 실례하였으나 감히 묻잡나니


어느 명산(名山)에 계시며 무슨 말씀을 가르치고자 와 계시니이까?"


  도인이 말하기를, "빈도는 종남산(終南山) 옥주동에 있는 승려이옵니다. 아까


우레에 장성이 내려왔으매 찾아왔더니 이제 존안을 뵈오니 다행이로소이다."


  서백이 좌우를 명하여 아이를 갖다가 도인을 주니 도인이 말하기를, "이 아이를


길러 제후께서 돌아오시는 날 받들어 드릴 것이니 제후의 뜻이 어떠하나이까?."


  서백이 말하기를, "명대로 하려니와, 이 아이 이름을 무엇이라 하리이까?"


  도인이 답하기를, "우렛소리에 내려왔으니 뇌진자(雷震子)라 하사이다."하고


안고 종남산으로 가니라.


 


  차설 서백이 무사가 오관을 지나 황하수를 건너 조가에 와 금정관역에 이르니


역중에 3 제후가 먼저 와 있더라. 동백후 강환초와 남백후 악숭우와 북백후


숭후호 3 제후가 역에서 술 먹다가 서백후를 맞아 좌정 후 다시 술을 내어오게


하여 서로 권하매 밤이 이미 깊었더라. 한 역졸이 지나며 이르기를, "여러 대신이


오늘 밤에는 즐기거니와 날이 밝으면 붉은 피 저자거리에 물들리라."하거늘


서백이 듣고 역졸 등을 잡아 문초하니 그 중에 요복이 아뢰기를, "소인이 깊은


밤에 어르신들이 들으시는 줄 모르고 비밀사를 누설하였삽더니 이제 발각이


되었으매 어찌 숨기리이까?"하고 달기의 참소로 강황후가 참형당한 일과 4 대신을


다음 날 아침에 함께 저자에 베라하기로 아무 생각없이 말이 나옴을 깨닫지


못하였음을 아뢰니 강환초가 급히 묻기를, "황후께서 참형을 어떻게 당하여


계시뇨?"하니 요복이 답하기를, "황후 낭랑을 서궁으로 내려 한 눈을 빼고 두


손을 불로 지져 포락하였나이다."


  강환초가 그 말을 들으매 몸을 칼로 저미는 듯 마음을 기름으로 지지는 듯하여


한소리 크게 지르며 꺼꾸러지거늘 서백이 붙들어 일으키니 환초가 통곡하며


말하기를, "내 아이를 눈을 빼고 손을 포락하였다 하니 자고로 지금까지 이런


일도 있는가?"하며 밤새도록 부르짖더라.


  날이 밝으매 4 진의 제후가 다 이르렀음을 고하니 간신 비중이 천자께 가만히


아뢰기를, "4 진의 제후가 글을 올릴 것이니 글을 보지 마시고 전지하여 흑백


없이 4 제후를 함께 벰이 상책일까 하나이다."하더라.


  주왕이 전에 오르니 4 진의 제후가 전하에 나아와 글을 올리거늘 주왕이 보지


아니하고 먼저 강환초를 불러 말하기를, "강환초야, 네 죄를 아느냐?"


  환초가 아뢰기를, "신이 동쪽 지방을 엄숙히 지키어 신하의 도리를 극진히


하였사오니 무슨 죄 있사오리이까? 폐하께서 총비의 요언(妖言)과 간신의 참소를


들어 황후를 참형하고 충량을 살해하여 종사를 망하게 하시니 이제 요비(妖妃)와


간신을 멀리하고 어진 정사를 닦으시면 죽은 자도 다행이요 산 자도 다행일까


하나이다."


  주왕이 대로하여 꾸짖기를, "늙은 역적이 딸을 명하여 임금을 죽이고 자리를


빼앗으려 하는 죄가 태산 같거늘 무슨 간사한 말을 하느냐?"하고 무사를 호령하여


환초의 관복을 벗기고 노끈으로 결박하여 남문에 밀어내어 베어 젖을 담궜으나


환초가 죽기에 이르도록 꾸짖기를 그치지 않더라.


  서백후 희창과 남백후 악숭우와 북백후 숭후호 등이 글월을 올려 말하기를,


"폐하께서 대통을 이은 뒤로 어진 정사는 없고 소인을 친히 하고 군자는 멀리하고


주색에 빠지며 황후께서 어질고 예의가 있어 실덕(失德)함이 없거늘 참형을


만나고, 달기는 궁중을 더럽히되 정궁을 봉하시며 대신을 젖 담아 국가의 인재를


폐하며 포락을 지어 충간하는 입을 막으시니 신들은 원컨대 비중과 우혼을


폐하시고 달기를 베어 위엄을 엄숙하게 하시면 하늘의 마음을 돌려 천하가


평안하리이다."


  주왕이 보기를 다하매 대로하여 글을 찢어버리고 책상을 치며 크게 꾸짖기를,


"이 역적의 무리를 바삐 목베어 매달고 아뢰라."


  무사들이 일제히 3 대신을 잡아내니 비중 우혼이 자리에서 나와 아뢰기를,


"강환초는 임금을 죽이려는 악이 있고, 악숭우는 임금을 꾸짖는 죄가 있으며,


희창은 임금을 능모(陵侮)한 허물이 있으나, 숭후호는 충성을 다하여 나라를


도우며 적성루와 수선궁을 지은 공이 있고 또 아뢴 글은 다른 사람을 따라 함이요


제 뜻은 아니니이다."하니 주왕이 본디 비중과 우혼의 말은 다 들어주는지라,


주왕이 명하여 숭후호 한 사람만 용서하라 하더라. 무성왕 황비호와 승상 비간과


미자와 기자와 백이와 숙제 등이 모두 이렇게 간하니 주왕이 말하기를, "강환초의


모역과 악숭우의 욕함과 희창의 망언(妄言)은 용납지 못하리니 경들은 망령되이


굴지 말라."


  황비호가 또 아뢰기를, "이제 4 지방의 대제후를 다 죽이면 한 지방 소속


200국의 소제후들이 다 제 임금이 죄 없이 죽었다 하여 필연 반란을 일으키리니


폐하께서 누구와 더불어 종사를 보전하시리오? 바라건대 폐하는 재삼


생각하소서."하니 주왕이 말하기를, "희창은 충량이 있다고 들었으니 경들의 말을


들으려니와 악숭우가 임금을 욕한 죄는 사하지 못할 것이니 경들은 번거히


말라."하고 노웅을 명하여 악숭우를 남문 밖에 내어 목베어 매달고 희창은 놓아


보내려 하니 비중과 우혼이 아뢰기를, "희창을 놓아 보냄은 용을 바다에 들임이요


범을 산에 놓음이라. 만일 희창이 환국하여 강문환과 악순과 결탁하면 전쟁이


그칠 날이 없을 것이니 희창을 유리에 가두어 천하 태평한 후 놓음이


가하니이다."


  주왕이 명하기를, "희창의 죽을 죄는 사하거니와 본국에 돌아감은 허락지


아니하나니 아직 유리에 가 있다가 천하가 평안하거든 가게 하라."하니 서백이


탄식하기를, "하늘이 정한 수를 어찌 면하리오?"하시고 유리로 나아가시니라.


 


  차설 동백후와 남백후의 부하 장수들이 성으로 돌아가 두 제후의 아들에게


고하니 강환초의 아들 강문환은 40만 병을 발하여 유혼관을 치고 악숭우의 아들


악순은 군사 20만을 발하여 삼산관을 칠새 400진의 소제후들이 또한 반기를 들어


호응하니 무성왕 황비호가 탄식하기를, "어진 군사가 일어나매 천하가 다 반란을


일으키리니 백성이 어느 때 평안하리오?"하더라.


 


  차설 주왕이 달기로 더불어 적성루에서 잔치할새 술이 반취하니 달기가 춤추며


노래하니 삼궁 비빈과 숙원 등 모든 여인들이 소리하여 화답하되 그 중 궁녀 70여


인은 노래를 아니 하고 슬픔을 띠어 눈 아래 눈물 흔적이 있더라. 달기가 춤추다


살펴보니 본래 강황후의 시녀로 옛 주인을 생각함이라. 달기가 노하여 말하기를,


"옛날 주인이 모역(謀逆)하다가 죽었거늘 너희들이 원망을 품어 이러하니 오래


두면 궁중에 큰 환이 있으리라." 하고 주에게 고하니 주왕이 대로하여 궁녀의


옷을 벗겨 뱀 구덩이에 던져 물려 죽게 하니, 가련하다 72명의 궁녀들이 만분


구렁을 굽어보니 수천 마리 뱀이 서로 얽히어 머리를 두르며 혀를 놀림을 보고


정신이 아득하여 크게 부르짖어 말하기를, "황천후토(皇天后土)는 살피소서.


저희들이 무슨 죄로 이런 악형을 당하리이까?" 하며 서로 붙들고 통곡하니 모시는


관리가 달려들어 여러 궁녀를 구렁에 밀치니 여러 마리의 주린 뱀이 얼크러져


피도 빨며 살도 먹으니 그 경상은 차마 보지 못하겠으되 주는 보고 즐겨하며


달기의 등을 어루만져 말하기를, "어처의 기묘한 법이 아니면 어찌 저 궁녀를


다스리리요?"하더라.


 


  차설 달기는 옥석비파의 원수를 갚기를 생각하고 한 그림을 주에게 올려


말하기를, "이 그림이 녹대(鹿臺)의 그림이니 이대로 지으면 서왕모(西王母)의


요지(瑤池) 옥궐(玉闕)이라. 그 누각에서 잔치하면 자연이 선관, 선녀가


하강하리니 폐하께서 이제 신선으로 더불어 노시면 해마다 수명을 늘여 인간


부귀를 누리시리다."하니 주왕이 말하기를, "이 집을 누가 지을꼬?"


  달기가 아뢰기를, "하태우 강상이 가하니이다."


  주가 자아를 불러 그림을 주며 말하기를, "이 도형대로 이 누각을 지으면 그


공을 크게 쓰리라."


  자아가 살펴보니 주란화각(朱欄畵閣)이 영롱하여 호박, 산호, 유리, 진옥,


명주로 지을지니 그 거룩한 경치는 기록지 못할러라. 자아가 생각하되, '못난


임금을 위하여 이 누대를 지으면 천하 재물이 낭비되고 백성이 도탄에 들 것이요,


짓지 아니하면 죄를 받으리니 차라리 벼슬을 버리고 산간에 숨었다가 어진 임금을


도우리라.'하고 아뢰기를, "이 누대를 이대로 지으면 물자가 많이 들 뿐 아니라


백성이 도탄에 들 것이요, 또 40년이라도 일을 끝내지 못하리이다."


  주왕이 달기더러 말하기를, "강상의 말 같을진대 내 나이가 많고 병이


잦은지라, 사람의 일을 믿지 못하리니 차라리 백성의 폐를 더는 것만 같지


못하다."하니 달기가 말하기를, "강상이 외방(外方) 술사로 중한 벼슬을 하였으니


폐하의 은혜를 갚을 생각은 아니하고 거짓말을 꾸며 폐하를 속이니 그 죄는 죽여


마땅하니이다."하니 주왕이 말하기를, "어처의 말이 옳다."하고 명을 내려 강상을


잡아내어 포락을 행하라 하니 자아가 말하기를, "폐하께서 황음무도하여 요망한


왕비의 모함을 들어 백성을 살해하고 또 녹대를 지어 하나라 걸왕의 일을


행하시니 오래지 않아 사직(社稷)과 백성이 남에게 준 바 되리이다."하니 주왕이


대로하여 말하기를, "늙은 것이 어찌 천자를 비방하는가?"하고 좌우를 명하여


바삐 참하여 젖을 담궈 국법을 바르게 하라 하니 무사가 잡으려 하거늘 자아가


몸을 빼어 누 아래로 뛰어 날아가거늘 주왕이 보고 성내다가 웃다가 하며


달기더러 말하기를, "저 늙은 것이 예절 없이 뛰어 날아가는 꼴을 보라."하고


무사를 명하여 급히 잡아들이라 하니 자아가 용덕전 구간전을 지나 구룡교에


다다라 무사를 돌아보며 말하기를, "너희는 따르지 말라. 내 한 번 죽을


따름이라."하고 구룡교 다리 아래 물로 뛰어들며 간 곳을 모를러라.


  무사들이 돌아와 주에게 자아가 물에 빠져 기척이 없음을 고한대 주왕이


말하기를, "제 죄를 알고 죽도다."하고 달기더러 말하기를, "강상이 죽었으니


누구에게 녹대를 지으라 할꼬?"


  달기 말하기를, "북백후와 숭후호가 아니면 공을 이루지 못하리이다."


  주왕이 즉시 숭후호에게 명하여 녹대를 지으라 하니, 숭후호는 만고 간신이라


어찌 사양하리요? 숭후호가 녹대를 지을새 들어가는 물자는 이루 헤아리지 못하고


만민의 괴로움을 비할 데 없더라. 각 읍에 방을 붙여 한 호에 군정(軍丁) 셋씩을


내어 공사를 하게 하되 거역하는 자는 목베고, 연고가 있는 자는 돈을 바치되


돈을 아니 바치면 목을 베리라 하니 백성의 원망이 하늘에 사무치더라.


 


  차설 자아가 구룡교 물에 수둔법(水遁法)을 행하여 송이인의 집에 오니 마씨가


묻기를, "서방님이 어찌 급히 오시나요?"


  자아가 말하기를, "내 벼슬을 버리고 왔노라."


  마씨 크게 놀라 말하기를, "이 어찌 된 말씀이니이까?"


  자아가 주의 무도한 일을 전하고 말하기를, "이는 내 임금이 아니라. 이제


서기로 가고자 하나니 부인은 나를 좇아가 성주(聖主)를 도우면 복록이


많으리라."


  마씨가 말하기를, "그대 외방 술사로 벼슬이 태우에 이르러 복록이 적지


아니하거늘, 어찌 천자의 덕을 잊고 임금을 배반하나뇨?"


  자아가 말하기를, "부인은 마음을 놓으라. 처음부터 서기에 가 거룩한 임금을


찾고자 함이라. 어찌 못난 임금을 섬겨 내 도덕을 무너버리리오? 그대 나와 함께


서기로 가면 벼슬이 일품(一品)에 이르고 머리에 화관을 쓰고 몸에 비단옷을


입으리니 어찌 아름답지 않으리오?"


  마씨 웃으며 말하기를, "그대 말이 그르도다. 이제 천자의 은덕을 입고 복록을


버리고 서기로 가고자 하니 서백이 그대를 보고 무슨 일로 높은 벼슬을 주리오?"


  자아가 말하기를, "그대는 여자라 대도(大道)를 알지 못하는지라. 사람이


천수(天數)가 있나니 내 은나라를 버리고 서기로 가려 함이 또한 천수라. 어찌


못난 임금을 섬기리오?"


  마씨가 말하기를, "내 그대와 부부가 되었으나 나는 양반 가문에서


생장(生長)한 사람이라. 어찌 본국을 버리고 타향에 가리오?"


  자아가 말하기를, "그대가 나를 좇지 아니하고 타일 뉘우치지 말라."


  마씨가 말하기를, "저는 본디 고향을 버리고 서기로 감을 원치 아니하나니,


그대는 가도 나는 부모를 좇아 본국에 있으리니 어찌 뉘우침이 있으리오?"


  자아가 탄식하기를, "그대가 나를 좇아가지 아니함이 반드시 다른 뜻이


있도다."


  마씨 대로하여 말하기를, "그대기 어찌 이런 말을 하나뇨? 내 이제 천자께


아뢰어 가라 하시거든 당당히 가리라."하고 두 사람이 서로 다투더니 송이인이 그


처 손부인과 더불어 와 말려 말하기를, "아우야, 마씨는 이미 그대를 따르지


아니하려 하니 그대는 한 장 글을 지어 표를 삼게 하고, 서기로 가 아름다운


배필을 얻고 거룩한 임금을 섬기라."하니 자아가 말하기를, "형님과 형수씨의


교훈대로 하리이다."하고 먹과 붓을 내어 마씨에게 아쉬워하는 정을 표하니


마씨는 조금도 아쉬워하는 빛이 없거늘 자아가 말하기를, "그대는 내 정과 같지


못하다."하고 서기로 향할새 송이인이 술을 부어 전송하여 말하기를, "아우는


오늘 조정을 버리고 거룩한 임금을 찾으러 가니 실로 아름답도다."하고 서로 눈물


뿌려 이별하니라. 마씨는 제 집에 돌아가 개가(改嫁)하니라.


 


  자아가 행하여 황하수를 건너 임동관에 이르니 길에 백성 칠팔백이 모여 서로


붙들고 통곡하거늘 자아가 묻기를, "너희는 어찌 이렇듯 슬퍼하나뇨?"


  백성들이 대답하기를, "천자가 숭후호에게 명하여 녹대를 지을새 잠깐이라도


더디면 형벌을 주나니 우리가 견디지 못하여 이 땅에 와 서기로 향하더니


장통병이 내어 보내지 아니하고 도로 조정으로 잡아 보내려 하니 원컨대 태우는


우리를 관문 밖으로 나가게 하소서."


  자아가 모든 백성을 앞세우고 곤륜산을 바라보며 주문을 외우고 머리를


조아리니 문득 한 떼의 구름이 공중으로 내려와 모든 백성을 태워 서기로 가니


다만 귀에 바람소리만 들리더라.


  한 시각 만에 오관을 지나 금계령에 다다르니 자아가 여러 사람더러 묻기를,


"너희는 이 곳을 아느냐?"


  여러 사람들이 머리를 조아리며 답하기를, "태우의 신기한 도술로 우리가 여러


관을 지나왔으니, 원컨대 태우는 의지할 곳을 가르치소서."


  자아가 말하기를, "이 곳은 금계령이라. 너희들이 서기의 승상부를 찾아가면


자연 도리가 있으리라."하니 백성들이 승상부에 가 승상 산의생에게 온 연유를


고하니 승상이 세자 백읍고에게 아뢰고 창고를 열어 어려움을 구제하고 농업에


힘쓰게 하니라.


  자아가 백성을 인도하고 산천을 유람하다가 한 곳에 이르니 이 곳은 위수


가이라. 산천이 수려하여 송죽(松竹)은 의의(依依)하고 푸른 버들은 시내를


둘렀으니 진실로 은둔하는 선비들이 머물 곳이라. 그 곳에서 매일 위수에


낚싯대를 드리워 세월을 보내더라.


 


  각설 서백후의 세자 백읍고가 문무 신하를 모아 가로되, "부친이 유리성에


갇히신 지 7년이라. 우리 형제가 99명이나 있어도 무엇에 쓰리요? 내 이번에 가서


부친을 대신하여 속죄하려 하니 경들은 알아 두라."


  상대부(上大夫) 산의생이 아뢰기를, "주공이 떠나실 때 하신 말씀에, '7년 액이


지나면 자연 무사히 돌아올 것이니 부질없이 움직이지 말라.'하여 계시니


공자께서 그 말씀을 생각하사 사신(使臣)을 부려 소식을 알아보심이 좋을까


하나이다."


  백읍고가 말하기를, "대부는 여러 말 말라. 내 당당히 부친의 죄를


대신하리라."하고 내전에 들어가 모친 태희께 하직하니, 태희가 생각하니 자식이


아비 대신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 말리지 못하여 허락하시고 이르시기를, "네


국사(國事)를 뉘게 부탁하려느냐?"


  태자가 대답하기를, "안의 일은 희발 형제에게 맡기고 바깥일은 산의생


남궁괄에게 부탁하였나이다."


  태희가 말하기를, "아들아, 이번에 가거든 조심하여 하라."하시니 백읍고가


하직하고 나와 희발과 산의생 등에게 부탁하고 떠나니 희발의 98 형제와 산의생,


남궁괄 등 문무백관이 10리 장정에 나와 전송하니, 백읍고가 눈물을 뿌려


작별하고 채찍을 날려 말을 놓아 오관을 지나 황하수를 건너 맹진에 이르렀더라.


  조가 성 화관역에서 쉬고 이튿날 승상부를 찾아 승상 비간을 보고 부친 대신


속죄 왔음을 고하니 비간이 백읍고의 손을 잡고 차탄함을 마지아니하고 적성루에


나아가 주에게 아뢰기를, "서백후의 아들 백읍고가 조공(朝貢)을 바치고 아비


대신 속죄하려 왔나이다."하니 주왕이 명하여 누에 오르라 하니 백읍고가


무릎으로 행하여 누에 올라 엎드려 절하니 아뢰기를, "네 아비가 임금을 거역한


죄가 크거늘 네가 조공을 바치고 죄를 속하려 하니 가위 효자로다."하니 백읍고가


아뢰기를, "신의 아비의 죽을 죄를 사하시고 유리에 두시니 호생지덕(好生之德)이


하늘 같사오나 이제 신으로 신의 아비 죄를 대신하시고 신의 아비를 본국으로


보내시면 신이 몸을 바쳐 폐하의 성덕을 만분지일(萬分之一)이나


갚사오리다."하니 주왕이 백읍고의 아비를 위하여 바치는 사연이 긍측함을 보고


감동하여 좌(座)를 주니 백읍고가 사은하고 난간 밖에 섰는데, 달기가 백읍고의


화려한 용모와 청수한 미목(眉目)과 붉은 입술과 흰 이와 언어의 유순함을 보고


흠모하는 마음을 금치 못하여 주렴(珠簾)을 걷고 나오거늘 주왕이 달기더러


말하기를, "서백후의 아들 백읍고가 공을 바치고 아비의 죄를 속하려 하니 그


뜻이 가긍하다."하니 달기가 아뢰기를, "제가 들으니 백읍고의 거문고 타는 법이


세상에 짝이 없다 하오니 한번 시험하소서."하니 주왕이 말하기를, "어처는 어찌


아나뇨?"


  달기가 말하기를, "제가 비록 여자나 어려서 규방(閨房)에 있을 때 부모에게


들은 바로소이다."


  주는 주색의 무리라, 달기의 요언(妖言)을 듣고 문득 백읍고에게 명하여


달기에게 인사를 드리라 하니 백읍고가 달기에게 절하고 인사하니 달기가


말하기를, "백읍고야, 내 들으니 네 거문고를 잘 탄다 하니 한 곡조를 시험함이


어떠하뇨?"


  백읍고가 답하기를, "신이 들으니 부모가 병이 있으면 자식 된 자는 옷을 벗지


아니하며 밥을 편히 먹지 아니한다 하오니 이제 신의 아비가 위리에 갇히어


고초를 겪는데 신이 차마 어찌 거문고를 타 즐거움을 하리이까?"하니 달기가


말하기를, "백읍고야, 네가 이런 지경을 당하여 한 곡조를 무르녹게 잘 타면 네


아비를 놓아 본국에 돌아가게 하리라."


  백읍고가 이 말을 들으매 크게 기뻐하여 거문고를 무릎 위에 얹고 옥수(玉手)를


들어 한 곡조를 타니 청아한 소리가 봉(鳳)이 하늘에서 우는 모양 같더라. 주왕이


듣고 크게 기뻐 달기더러 말하기를, "어처의 들은 바와 같다."하고 적성루에


잔치를 크게 베풀라 하니 달기가 생각하되. '내 백읍고와 더불어 난봉(鸞鳳)의


우비지락을 이루리라.'하고 큰 잔에 술을 부어 주를 잔뜩 취하도록 권하니 주왕이


연달아 마시고 거꾸러지거늘 달기가 궁녀에게 명하여 의자 위에 누이고, 거문고


둘을 내어 와 하나는 달기가 타고 하나는 읍고를 주어 서로 화답할새 달기가


화용월태(花容月態)로 붉은 입술을 반만 열고 눈길을 흘려 정을 보내어 읍고의


마음을 유혹하여 어지럽게 하나 읍고는 다만 거문고만 타니 달기가 시녀에게


명하여 자리를 바로 달기 곁에 펴고 읍고를 인도하거늘 읍고가 혼비백산하여 꿇어


고하기를, "낭랑(娘娘)은 만승국모(萬乘國母)시라 신이 어찌 감히 곁에


앉으리이까?"하고 엎디어 머리를 들지 아니하니 달기가 말하기를, "군신(君臣)은


부자(父子)와 한가지라. 내 곁에 앉음이 무엇이 방해로우리오?"하니 읍고가


말하기를, "낭랑이 신으로 개돼지의 행실을 하게 하심이라. 신이 비록 만 번


죽사와도 받들지 못하리로소이다."


  달기가 뜻을 이루지 못함을 한하여 생각하되, '저 못난 것을 잡아 가루를 내어


내 한을 풀리라.'하더라. 날이 밝으매 주왕이 달기더러 말하기를, "밤에 거문고를


몇 번이나 익혔나뇨?"


  달기가 답하기를, "읍고가 거문고 곡조에 음란한 마음을 품어 첩을


조롱하더이다."


  주왕이 대로하여 죄를 물으려 하거늘 달기가 말하기를, "폐하께서 다시 거문고


한 곡조를 시험하여 보소서."


  주왕이 읍고를 명하여, "다시 거문고 한 곡조를 잘 타 짐으로 하여금 즐겁게


하라."


  읍고가 생각하되, '내 그물에 걸린 새라. 벗어날 길이 없으니 충간이나 하다


죽으리라.'하고 한 곡조를 연주하니 곡 중에 가라사대


 


   포락 만분이 참혹함이여, 천하 분분하도다.


   사음(邪淫)을 물림이여, 사직이 강녕(康寧)하리로다.


   읍고를 모함함이여, 만 번 죽을 따름이로다.


   달기를 거절함이여, 사책(史冊)에 유전(遺傳)하리로다.


 


  하고 읍고가 노래를 마치고 머리를 돌려 거문고를 달기 앞에 던지니 소반이


깨어져 뛰며 달기가 땅에 거꾸러지거늘 주왕이 대로하여 말하기를, "못난 것이


거문고로 황후를 치니 이 역적을 빨리 구덩이에 넣어 뱀에게 물려 죽게 하라."


  달기가 말하기를, "읍고의 죄는 제가 처치하리이다."하고 읍고의 수족(手足)에


못을 박고 칼로 살을 저며 죽이니 읍고가 죽기에 이르도록 꾸짖기를 그치지


아니하더라. 달기가 아뢰기를, "희창이 선천수를 잘 안다 하니, 읍고의 고기로


떡을 만들어 희창을 주어 먹으면 선천수를 안다 하는 말이 헛말이니 놓아 보내어


황상의 호생지덕을 펼 것이요, 아니 먹으면 참 성인이라 죽여 후환을 끊음이


좋을까 하나이다."


  주왕이 말하기를, "어처의 말이 옳다."하고 읍고의 고기로 떡을 만들어 유리로


보내니라.


 


  차설 서백이 하루는 심사가 자연 산란하여 한 괘를 얻고 크게 놀라 눈물을 흘려


말하기를, "우리 아이가 아비 말을 듣지 아니하고 목숨을 잃는 화를 당하였도다.


자식의 고기를 먹지 아니하면 죽기를 면치 못할 것이요, 먹자 하니 어찌 차마


하리오?"하고 소리도 못 하고 슬픔을 머금고 있더니 이윽고 사관이 와 임금의


말을 전지하기를, "황상(皇上)이 어제 사냥하사 사슴을 얻어 떡을 만들어 제후가


오래 유리에 고초함을 불쌍히 여기사 내려주신다."하거늘 서백이 꿇어 말하기를,


"희창의 죄가 중하거늘 성상(聖上)이 안마에 수고로움을 하사 범죄한 저에게 떡을


만들어 보내시니 바라건대 폐하는 만수무강(萬壽無疆)하소서."하고 3 조각 떡을


다 먹고 다시 절하여 사은하거늘 사관이 돌아와 그대로 고하니 아뢰기를, "희창이


선천수를 안다 하는 말이 헛소문이라."하고 특별히 조서(詔書)하여 희창을 놓아


환국(還國)하라 하니 희창이 사관을 따라 적성루에 나아와 엎드려 절하고


아뢰기를, "범죄한 신하 희창이 죄 죽어 마땅하거늘 임금의 은혜를 입사와 다시


폐하를 뵈오니 바라건대 폐하는 만수무강하소서."하니 주왕이 말하기를, "경이


7년을 유리에 있어 원망하는 말이 없고 도리어 나라가 융성하며 천하 태평하기를


빈다 하니 짐이 경을 저버림이 많도다."하고 특별히 잔치를 배설하고 벼슬을


더하고 표지를 주어 정벌을 알아서 하게 하며 매월 쌀 일천 석을 주고 문관(文官)


두 사람과 무장(武將) 두 사람을 주어 본국으로 가되 사흘을 쉬고 가라 하니라.


 


  화설 서백이 사은하고 나오매 승상 비간과 미자와 기자와 대소 관원이 다 모여


경하(慶賀)할새 성중 백성 남녀노소 없이 다 나와 이르되, "충량하신 제후께서


오늘에야 액을 면하시고 고국에 돌아가시니 천세(千歲)를 누리소서."하며 손과


발을 놀려 춤추는 모양이 보기에 거룩하더라.


  이 때 전면에 깃발과 창칼이 늘어서며 한 부대 기마병이 이르니 이는 무성왕


황비호라. 말에서 내려 하례하기를, "이번에 제후께서 천자의 은덕을 입어


영귀(榮貴)하시니 천만 기쁜지라. 보잘 것 없는 제가 한 말씀을 드리고자 하오니


용납하시리이까?"


  서백이 공경하여 대답하기를, "명대로 하리이다."


  비호가 말하기를, "시방 요망한 왕비와 간신이 권력을 휘두르매 조정의 명령을


믿을 수가 없으니 제후께서는 바삐 이 그물을 벗어 오늘밤에 떠나소서."하니


서백이 옳게 여겨 사례하고 그 날 밤에 떠나 밤낮으로 가서 맹진을 지나 황하를


건너 임동관에 이르러 멀리 바라보니 티끌이 자욱하며 군사들의 고함 소리가


은은히 들리거늘 서백이 탄식하기를, "내가 무성왕의 말을 따라 미리 떠남을


간신들이 참소하도다."하고 말을 채쳐 달리더라.


 


  차설 서백이 밤에 급히 감을 비중과 우흔이 알고 주에게 아뢰기를, "폐하께서


희창을 삼일 유가(三日遊街)한 후 대궐에 나와 사례하고 가라 하셨사온데 저가


미리 밤에 도주하였으니 그 죄는 마땅히 베일지라. 바라건대 폐하는 급히 잡아


들이사 후환(後患)을 덜게 하소서."


  주왕이 대로하여 신무장군 은파파와 뇌개 두 장수에게 명하여 철기(鐵騎)


3,000명을 거느리고 희창을 잡아와서 국법(國法)을 정히 하라 하니라.


 


  차설 서백이 뒤에 뒤쫓는 병사가 오는 것을 알고 서천을 향하여 달리더니


공중에서 우렛소리가 나며 한 괴이한 형상이 내려와 말 앞에 엎드려 고하기를,


"서백후 회창 어른이시니이까?"


  서백이 놀라 살펴보니 신장이 두 길이요 어깨에 두 날개가 있고 얼굴이 푸르고


털은 붉고 안광(眼光)은 불빛이요 어금니는 볼을 뚫었으니 인간에 보던 바


처음이라.


  서백이 말하기를, "나는 그런 사람이지만, 너는 사람이냐 귀신이냐?"


  뇌진자가 대답하기를, "소자는 종남산 운중자에게서 길러진 뇌진자로소이다.


사부(師傅)의 명을 받아 부친의 급한 화를 면하려 왔나이다."


  어언간에 쫓는 병사가 앞에 왔거늘 뇌진자가 두 날개를 펴 공중으로 솟았다가


내려와 진 앞에 서며 크게 호통하니 군사가 정신이 어찔하여 중군에게 고하되,


"사나운 귀신이 길을 막는다."하니 은파파와 뇌개가 대로하여 말을 놓아 내달아


크게 소리치기를, "네 어떠한 것이 감히 임금의 군사를 막느냐?"하고 칼을 두르며


달려들거늘 뇌진자가 또한 크게 소리치기를, "나는 서백후 문왕의 100번째 아들


뇌진이라. 나의 부왕(父王)은 성인군자라. 임금을 섬김에 충성을 다하시며 부모를


섬김에 효성을 다하시며 공무를 수행하고 법을 지켜 신하의 도리를 다하시거늘


무단히 7년을 갇히어 계시다가 다행히 용서를 받아 귀국하시거늘 너희 간신이


권세를 휘둘러 또 핍박하니 내 너희를 한 놈도 아니 보낼 것이로되 내 사부의


교훈과 부왕의 명을 받들어 살려 보내나 나의 용맹을 보라." 하고 두 날개를 펼쳐


공중으로 오르며 동서남북으로 달리니 바람과 우렛소리가 천지에 진동하고


황금곤(黃金棍)의 기운은 무지개같이 북두칠성과 견우성을 깨치거늘 은, 뇌 두


장수가 한 번 바라보매 혼비백산하여 쥐 숨듯 군대를 거두어 도망하니라.


 


  차설 뇌진자가 내려와 서백께 뵈온대 서백이 말하기를, "아이야, 7세 소아가


어찌 도술이 이러하며 네 형용이 저러하냐?"


  뇌진자가 대답하기를, "하루는 사부께서 저를 불러 이르시되, '네 부친의


화액(禍厄)이 눈앞에 있으니 후원 아무 곳에 가 군기를 가지고 바삐


하산(下山)하여 네 부친의 화액을 구하라.'하시기에 급히 가 보온즉


기화요초(琪花瑤草) 가운데 한 나무에 열매 두 낱이 달려 있기로 따 먹었더니


별안간에 형용이 이리 되었사옵니다. 나아가 사부께 뵈온대 사부께서 황금곤을


주시며, '네가 이 병기를 가지고 바삐 가 네 부친을 구하여 오관을 넘겨드리고 곧


오라.'하여 계시니 바라건대 부친은 저의 등에 업혀 눈을 감으소서."하거늘


서백이 뇌진의 등에 업히니 귀에 바람소리만 들리더라. 순식간에 내리니 서기의


금계령일러라. 뇌진이 하직을 고하니 서백이 말하기를, "아이가 어찌 나를 예다


두고 먼저 가느냐?"하니 뇌진이 말하기를, "부친은 먼저 돌아가소서. 저는 사부의


명을 어기오지 못하오니 저의 도술이 더 온전한 후 다시 모시리이다."하고 부자가


서로 눈물을 뿌려 이별하고 떠나니 서백이 혼자 행하여 금계령을 넘어 수양산에


이르렀더라.


  이 때 늦은 가을을 당하여 바람은 소슬한데 회포를 금치 못하여 고원을


바라보고 오더니, 문득 붉은 기가 번득이며 대포 놓는 소리에 한 부대 사람과


말이 나아오니 좌편은 대장군 남궁괄이요 우편은 상대부와 산의생이요, 문무


백관과 98명의 아들이 나아와 땅에 엎디거늘 서백이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눈물이


흐름을 깨닫지 못할러라. 이 때 서백의 모친 태강이 한 괘를 얻고 모월 모일에


서백이 올 것을 짐작하고 마중 보낸 것일러라.


  서백이 오다가 크게 한소리 지르고, "내가 죽겠구나."하고 말에서 떨어져


혼절(昏絶)하거늘 여러 문무 관료가 구하여 일으키니 입으로 고기 한 덩이를


토하니 변하여 한 토끼가 되어 서쪽으로 달아나는지라. 잇달아 토하니 다


고깃덩이라, 변하여 3 마리 토끼가 되어 서쪽으로 달아나더라.


  서백이 정신을 수습하여 내전에 들어가 모자와 부부가 서로 붙들고


일희일비(一喜一悲)하며 장자 백읍고를 생각하고 애통함을 마지아니하더라.


 


  차설 서백이 환국하고부터 백성이 더욱 평온하고 부유하여 격양가(擊壤歌)를


부르고 즐기더라.


  하루는 서백이 여러 신하더러 말하기를, "서북 정남에 한 누대(樓臺)를 짓되


이름을 영대(靈臺)라 하라. 백성과 더불어 재앙을 물리치고 상서(祥瑞)를 응하려


하고자 하나 토목 공사를 하면 백성이 수고로울까 염려하노라."하시니 산의생이


아뢰기를, "주공의 인덕이 초목과 금수에 미쳤으니 만민이 즐기지 않을 이 없을


것이요, 또 임금을 주어시키시면 무슨 괴로움이 있사오리이까?" 하니 서백이


대희하여 영대를 지을 명령을 내리시니 서기의 백성들이 이 명을 듣고 크게 기뻐


말하기를, "우리가 하늘같은 은덕을 갚을 바를 몰랐더니 이제 영대를 경영하신다


하니 우리가 몸을 바치더라도 기꺼이 할 바라. 어찌 돈을 바라리오?"하고


즐거워하는 소리가 원근에 진동하더라.


  서기의 백성들이 일제히 제 일하듯 하여 며칠 안에 마치니 문왕이 여러 신하와


더불어 영대에 오르사 사면을 보시다가 묵묵히 말씀이 없거늘 산의생이 아뢰기를,


"영대를 며칠 안에 지었삽거늘 무엇이 부족하사 즐겨 아니하시나이까?"


  문왕이 말하기를, "영대의 아래에 못 하나를 파 수화기제를 응하고자 하나


백성의 힘이 수고로울까 걱정하노라."


  산의생이 말하기를, "영대도 며칠 안에 지었사오니 작은 연못이야 무엇이


어려우리이까?" 하고 백성에게 명령하니 서기의 백성들이 듣고 크게 소리하여


가로되, "적은 연못 하나 파기가 무엇이 어려워 또 염려를 수고롭게 하셨다."하고


일시에 팔새 못 가운데 백골(白骨)이 나오매 여러 사람이 집어 버리거늘 문왕이


말하기를, "이는 내 허물이라."하시고 관곽(棺槨)을 갖추어 묻으라 하시니 여러


사람들이 크게 칭송하기를, "거룩하신 덕이 백골에까지 미치니 우리 백성들이


받은 은혜야 어떠하다 하리오?" 하고 즐거운 소리가 원근에 들리더라.


  영대와 영소의 역사를 마치매 문무의 여러 신하와 백성들과 잔치를 하여


즐기시고 영대에서 밤을 지낼새 한 꿈을 얻으니 날개 돋힌 백액호(白額虎)가 장막


안으로 들어오거늘 놀라 깨달으니 한 꿈이라. 산의생을 불러 꿈 말을 이르시니


대답하기를, "옛적 상고종(上高宗)이 꿈에 나는 곰을 보고 부열(傅說)을


판축지간에서 맞아 왔으니, 대왕의 꿈에는 나는 범을 보아 계시니 대현(大賢)을


만나실 길조(吉兆)이니 주나라가 장차 흥할지니이다."


  문왕이 크게 기뻐하사 환궁하시니라.


 


  화설 강자아가 마씨를 작별하고 서기로 향하여 오다가 백성을 구하여 오관을


넘겨 서기로 보내고 산천을 유람하다가 한 곳에 이르니 위수 가이라. 푸른 버들이


늘어진 곳에 한 낚시터가 있으니 이름이 반계라. 청산녹수(靑山綠水)가 진실로


은사(隱士)의 반환할 곳이라. 자아가 머물러 매일 낚싯대를 창파에 드리워


성주(聖主) 만나기를 기다리더라. 이 때 한 나무꾼이 나무를 지고 도끼를 들고


냇가에 와 쉬다가 강자아의 곧은 낚시에 미끼가 없음을 보고 괴이하게 여겨


나아가 묻기를, "대인은 어디 계시며, 존성 대명(尊姓大名)을 들어지이다."


  자아가 말하기를, "성은 강이요, 명은 상이요, 자는 자아요, 동해 허주 땅에


있노라."


  초부(樵夫)가 말하기를, "나는 서기 백성 무길이어니와, 대인의 낚시에 미끼가


없으니 무엇을 낚으려 하시나뇨?"


  자아가 말하기를, "내 공후(公侯)를 낚노라."


  무길이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옛적에 부열은 부암에서 담을 쌓다가 상고종을


만나 현달하였거니와 대인은 누를 기다리나뇨?"하고 웃기를 마지아니하거늘


자아가 말하기를, "그대가 내 말을 믿지 아니할진대 내가 그대를 위하여 신수를


보아 주리라."


  무길이 대답하기를, "대인이 내 신수를 맞추면 절하고 선생으로 섬기리라."


  자아가 이윽히 보다가 가로되, "오늘 그대가 성하(城下)에서 살인하고 대화를


만나리라."하니 무길이 대로하여 크게 꾸짖고 나무를 지고 바로 성중으로


향하더니, 이 때 문왕이 영대를 새로 짓고 거동하시는 날이라. 길이 막혀 가기가


어려울 것으로 생각하고 급히 들어가다가 한 군사가 나뭇짐에 다쳐 죽으니


관청에서 잡아다 가두되 땅을 그어 옥을 삼고 나무를 깎아 관원을 삼고 그 속에


가두니 무길이 그 연고를 물으니 옥졸이 대답하기를, "우리 문왕의 덕화가 초목과


금수에 미쳤으니 죄수가 감히 도망치 못하나니라."


 


  무길이 갇힌 지 삼일에 하늘을 보고 탄식하기를, "집에 칠십 노모께서 나만


믿거늘 내 갇힌 지 삼일이라, 뉘 봉양하리오?" 하고 통곡하거늘 마침 산의생이


지나다가 우는 모양을 보고 연고를 물으니 무길이 울며 고하기를, "소민(小民)의


죄가 죽음에 직하오나 칠십 노모께서 다른 자녀가 없고 다만 저뿐이라. 제가 갇힌


지 삼일이라. 저의 집 노모께서 굶어 죽었겠삽기로 가슴이 미어지는 듯하여


슬퍼하나이다."


  산의생이 측은히 여겨 문왕께 고하고 두 달 기한하고 보내니 무길이 집에 와


노모를 보고 엎드려 통곡하니 노모가 말하기를, "산에 가서 범의 밥이 되었는가


하였더니 어찌 살아왔느냐?" 하고 서로 붙들고 통곡하다가 무길이 전후사연을


고하고, "반계로 가 노옹을 보고 살아날 모책을 묻고자 하나이다."하니 노모가


재촉하여 보내더라.


  이 때 자아가 녹수청파에 낚싯대를 희롱하며 노래를 지어 흥을 돕더니 무길이


달려들어 머리를 조아리고 인사를 올렸으나 자아가 모르는 체하고 다른 데를


보는지라. 무길이 소리를 질러 말하기를, "제자가 왔나이다."


  자아가 정색하고 말하기를, "네 어떤 사람인대 남의 흥을 훼방하느냐?"


  무길이 울며 고하기를, "제자는 산중 무식한 백성이라. 대인의 높은 도덕을


모르고 무례한 죄를 사하소서. 과연 그 날 나무를 지고 성중에 들어가다가 대화를


만났나이다."하고 전후 사정을 고하고 울며 애걸하기를, "오래지 아니하여


관청에서 찾을 것이니 다시 잡혀 갇히면 모자의 명을 보전키 어렵사오니 바라건대


대인은 우리 모자의 명을 구하여 주소서."


  자아가 말하기를, "네 전날의 화는 하늘이 정한 운수이니 면치 못하려니와,


이제 다시 너를 찾지 아니하게 하리라."


  무길이 머리를 조아리고 말하기를, "대인의 은덕이 이러하시니 우리 모자가


분골쇄신(粉骨碎身)하여도 다 갚지 못하리로소이다."


  자아가 말하기를, "네 집에 돌아가 집 앞에 구덩이 하나를 파고 들어가 눈을


감고 누워 오늘 밤을 지내되 네 모친더러 등잔에 불을 켜 구덩이 가에 놓고 쌀


3되를 네 몸에 뿌리고 그 위에 잡풀을 많이 덮고 밤을 지내면 자연 화를


면하리라."


  무길이 절하여 사례하고 돌아가 가르친 대로 하고 밤을 지내니라. 이 날 자아가


무길을 보내고 그 날 밤 삼경(三更)에 머리를 풀고, 발� 벗고, 칼을 잡고, 북향


사배하며 말하기를, "무길이 죽었다."하니 무길의 주성(主星)이 떨어지니라.


이튿날 무길이 자아의 앞에 와 사례하거늘 자아가 말하기를, "오늘부터 내 제자가


되어 병법과 무예를 배우라. 시방은 왕이 무도하매 사방에 전쟁이 일어나니


은왕이 어찌 천하를 누리리오? 대장부가 세상에 처하여 입신양명(立身揚名)하여


가문을 빛냄이 떳떳한 일이라. 어찌 산간에서 초목과 같이 썩으리오? 마땅히 내


말을 들을쏘냐?"


  무길이 머리를 조아려 두 번 절하고 여쭙기를, "사부의 명은 물과 불이라도


피하지 못하거든 하물며 이런 말씀이야 어찌 받들지 못하리이까?"하고 그 날부터


무예와 병법을 익히더라.


 


  이러구러 여러 달이 지나매 산의생이 무길이 돌아오지 않음을 문왕께 고하기를,


"무길이 나라를 속이고 오지 아니하니 원컨대 주공은 금전(金錢)을 던져 무길의


존망(存亡)을 점복하사 제 집에 있거든 명일 관리를 보내어 잡아 국법을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문왕이 즉시 한 괘를 얻고 탄식하기를, "무길이 형벌을 두려워하여 구덩이에


빠져 죽었으니 어찌 불상치 않으리오? 내가 무길을 죽인 것이나 다름없다."하시고


한탄하심을 마지 아니시더라.


 


  재설 문왕이 전에 오르사 봄 경치를 완상하시며 민간질고(民間疾苦)를


의논하시니 이 때는 춘삼월(春三月) 망간(望間)이라. 수양버들은 시내를 둘렀고


복숭아꽃은 온 산에 무르녹았으니 경치가 정히 아름다운지라. 문왕이 환관을


보시고 말씀하시기를, "이제 봄꽃들이 화창하게 피어서 만물이 경치를


자랑하는지라. 내 경들과 더불어 산보를 하고자 하니 어떠하뇨?"


  산의생이 아뢰기를, "전일 주공이 영대에서 비호(飛虎)를 꿈꾸어 계시니 이는


현사(賢士)를 얻을 징조니이다. 산천에 순행하시어 춘색도 완상하시고 만민의


질고도 물으시며 어진 선비도 찾으심이 마땅할까 하나이다."


  문왕이 허락하사 여러 신하와 더불어 산천을 유람하실새 한 곳에 다다르시니 한


나무꾼이 묘에서 내려오며 노래를 불러 가로되,


   녹죽은 의의하고 춘수는 유유한데,


   고기 반계에 숨어 서로 만나지 못하였도다.


   세상 사람이 고현(高賢)의 뜻을 알지 못함이여,


   다만 시냇가에 빈 낚대를 드리웠도다.


  하거늘 산의생이 바라보니 분명한 무길이라. 문왕께 아뢰기를, "저 노래 부르는


자는 전일 군사를 죽인 무길이로소이다."


  문왕이 부르사 묻기를, "네 어떤 사람이냐?"


  무길이 문왕이신 줄 알고 겁내어 꿇어 고하기를, "제가 범죄한


무길이로소이다."


  문왕이 꾸짖기를, "하찮은 것이 어찌 나라를 속이느냐?" 하시고 산의생을


돌아보사 국법을 밝히라 하신대 무길이 고하기를, "제가 나라를 속인 죄 만번


죽사와도 마땅하오나 저의 노모의 나이가 칠십여 세라. 소민이 다른 형제와


처자가 없사오니 제가 죽으면 노모의 정경을 생각하옵고 슬피 울었삽더니 한


노옹(老翁)이 그 경상을 불쌍히 여겨 이러이러한 도술을 가르쳐 주옵기로 노모를


봉양할 마음으로 국법을 범하였사오니, 바라건대 저의 노모의 형편을 통촉하심을


바라나이다."


  문왕이 말하기를, "그 노옹이 어디 있나뇨?"


  대답하기를, "예서 몇 리를 가면 개울이 있는데 그 곳에서 낚시질하더이다."


  문왕이 말하기를, "네 그 노옹의 성명을 아는가?"


  대답하기를, "동해 허주 사람 강상이라 하더이다."


  산의생이 아뢰기를, "전일에 주공이 영대에서 꿈꾸심을 응하여 대현을 만나실


징조이오니 무길의 죄를 사하여 내리시고 반계로 가사이다."


  문왕이 무길을 사하사 길을 인도하게 하시고 다만 산의생을 데리시고 반계로


가시니 노옹은 간 곳 없고 다만 빈 낚시터뿐이라.


  문왕이 길이 탄식하거늘 산의생이 아뢰기를, "성주께서 어진 선비를 맞는 예가


있거늘 금일 임금께서 까닭이 없이 오시니 어진 선비가 알고 피하였는가


하나이다. 옛적 성탕(成湯)이 이윤(伊尹)을 만나실 때 길일(吉日)을 택하고


폐백(幣帛)을 받들어 맞아 계시니 이제 임금께서도 선현(先賢)의 일을


본받으소서."


 


  화설 문왕이 돌아오사 삼일재계(三日齋戒)하시고 폐백을 갖추어 반계로 가실새


무길로 무덕장군을 삼으사 앞을 인도하세 하시고 산의생으로 1만 문관을 거느리고


남궁괄로 무장을 총령(總領)하게 하니 깃발과 악기가 좌우에 나열하였더라. 반계


근처에 이르러 문무 중관을 다 머물러 두고 다만 산의생과 무길을 데리고 폐백을


받들어 나아가 반계에 이르니, 강자아가 위수 가에 앉아 바야흐로 낚시를


희롱하거늘 문왕이 감히 부르지 못하고 자아의 등 뒤에 이윽히 서 계시더니


자아가 풍경을 구경하며 노래하였더라.


   서풍(西風)이 일어남이여, 백운(白雲)이 날리도다.


   세월이 이미 저묾이여, 나 알 이 드물도다.


  자아가 노래를 마치고 낚시로 고기를 희롱하거늘 문왕이 나아가 절하여


말하기를, "희창이 선생을 뵈오러 왔나이다."


  자아가 못 들은 체하고 다른 데를 보거늘 반일(半日)을 서 계시되 조금도


태만하신 마음이 없더라. 또 절하여 말하기를, "원컨대 선생은 희창을


돌아보소서."


  자아가 그제야 문왕을 돌아보고 낚싯대를 던지고 땅에 엎드려 아뢰기를, "신이


성군이 오심을 알지 못한 죄를 사하소서."


  문왕이 급히 붙들어 일으키며 말하기를, "창의 선군(先君) 대공이 선생을


바라고 기다린 지 오래더니 창에게 이르러 존안을 뵈오니 선군의 뜻을 이룸이라.


원컨대 선생은 창을 가르쳐 도탄에 든 백성을 건지시기를 바라나이다."


  자아가 절하고 사례하며 말하기를, "신이 천한 나이 많삽고 재주 천박하여


명령을 받들지 못하리로소이다."


  문왕이 또 가라사대, "선생은 서토(西土) 백성으로 하여금 복을 누리게 하시고


창의 구구한 뜻을 저버리지 마소서."하고 예단을 올리니 자아가 말하기를,


"주공이 신을 이다지 관대하시니 어찌 명을 거역하리이까마는 다만 신이 재능이


없어 세상에 나기를 부끄러워하나이다."하거늘 문왕이 산의생과 무길에게 명하여


위의를 갖추어 성중에 들어올새 만성인민이 현인을 맞아 옴을 보고 저마다 기뻐


말하기를, "대왕의 은택을 갚지 못하여 하거늘 또 어진 사람을 얻어 오시니 서토


백성의 복을 어찌 다 이르리오?"하더라.


 


  차설 문왕이 선군을 사모하사 자아를 태공망이라 일컬으시고 승상을 삼아


정사를 다 태공께 의논하시고 큰 잔치를 배설하여 여러 신하와 즐기시니라.


문왕이 승상과 더불어 정사를 하매 국태민안(國泰民安)하고


가급인족(家給人足)하여 백성이 더욱 격양가를 부르더라.


  세월이 여류하여 문왕의 춘추 97세에 이르러 병환이 침중하시매 둘째 아들 발을


돌아보시며 가라사대, "나 죽은 후에 승상을 나와 같이 섬기되 사상보라 부르고


범사를 다 승상에게 아뢰고 결정하라."하시고 돌아가시니 발이 왕위에 올라


무왕(武王)이 되시니라.


 


  각설 서궁의 귀비 황씨 낭랑은 무성왕 황비호의 누이요 제패관 총병 황곤의


딸이라. 정월 초하루를 당하여 무성왕의 부인 가씨가 서궁 황비의 궁에 들어가


조하(朝賀)할새 먼저 정궁에 들어가 황후에게 조하하니 황후 달기가 자리를 주고


묻기를, "부인의 나이가 얼마나 되었나뇨?"


  부인이 대답하기를, "천한 나이 헛되이 49세이니이다."


  달기가 말하기를, "나보다 여덟 해가 위이니 내 형님으로 섬기리라."하거늘


가부인이 말하기를, "낭랑은 만승국모이시고 저는 한낱 지어미라. 어찌 봉이


닭하고 짝하리이까?"


  달기가 말하기를, "부인은 과히 겸사치 마소서. 내 비록 초방에 귀하다 하나


소후의 딸에 지나지 못하고 형님은 무성왕의 부인이요 또 황비와 자매니 또한


왕가의 친척이라 무엇이 낮음이 있으리오?"하고 적성루에 잔치를 배설하여


관대할새 달기는 위에 안고 가씨는 아래 앉아 술을 권할새 삼사 순배에 주왕이


이르거늘 가부인이 뒤뜰로 피하였더니 달기가 주에게 가부인이 자색이 있음을


고하고 가부인을 청하여 말하기를, "형님이 서궁비와 자매간이매 천자께 뵈옴이


방해롭지 아니하리라."하며 청하거늘 가부인이 크게 놀라나 이미 피할 수 없어


나와 뵈옵거늘 주왕이 곁눈으로 바라보니 가씨의 자색이 과연 아리따운지라.


  주왕이 명하여 앉으라 하니 가부인이 아뢰기를, "폐하 황후는


만승지존(萬乘之尊)이시라. 신첩이 어찌 감히 앉으리이까? 만번 죽사와도 받들지


못하리로소이다."하고 생각하기를, '내 달기의 간교에 빠졌으니 죽기를 면치


못하리라.'하고 엎드려 아뢰기를, "임금이 신하의 아내를 봄이 예가 아니오라.


원컨대 폐하는 신첩으로 하여금 누에서 내려가게 하시면 성은이 하늘과


같겠나이다." 하니 말하기를, "부인이 앉지 않으면 짐이 일어서서 한 잔 술을


받듦이 어떠하뇨?"하고 잔을 들고 일어서서 몸을 굽혀 술을 권하거늘 가씨의 성낸


털이 하늘을 찌를지라. 잔을 빼앗아 주의 얼굴을 향하여 갈겨 때리며 크게


꾸짖기를, "못난 임금아, 나의 남편이 나라를 위하여 충성을 다하거늘 그 공을


네가 생각지 아니하고 달기의 말을 들어 신하의 아내를 욕뵈려 하는가?"하고 또,


"달기야, 네가 죽을 땅을 생각지 아니하는가?" 하니 주왕이 대로하여 잡아내리라


하니 가부인이 크게 소리하여 말하기를, "뉘 감히 나를 잡느냐?"하고 몸을 돌이켜


한걸음에 난간 앞에 나아가 크게 부르짖기를, "황장군아, 첩의 몸이 명절(名節)은


온전히 하거니와, 가련타, 내 세 낱 아이를 뉘 거두어 주리오?"하고 몸을 날려


한번 뛰어 누 아래로 떨어져 분골쇄신하니라.


 


  차설 서궁의 차관이 황낭랑께 고하되 가부인이 적성루에서 떨어져 계시다


하거늘 황비가 크게 소리내어 울면서 말하기를, "달기가 무고히 내 형수씨를


모함하여 죽게 하였다." 하고 걸어서 적성루에 올라가 주를 가리켜 꾸짖더라.


  "내 형이 동으로 바다 도적을 치며 남으로 오랑캐를 물리치매 주야 노고하여


나라를 진정하니 그 충성이 어떻다 하리오? 내 형수씨가 조정에 인사드림이


국법을 지킴이라. 못난 임금아, 네 색을 좋아하는 무리로 내 형수씨의 자색을


보고 강상(綱常)을 범하여 음란하고자 하여 내 형수를 참사(慙死)케 하느냐?"


  황비는 본디 기력이 있는지라 달기를 가리켜 꾸짖기를, "이 음란한 요물아,


천자를 미혹케 하여 내 형수로 하여금 누에 떨어져 죽게 하느냐?"하고 달기를


잡아 굴리며 주먹으로 이삼십 차를 때리니 달기가 비록 요정이나 견디지 못하여


다만 부르짖기를, "폐하는 첩의 목숨을 구하소서."하니 주왕이 나아가 말려


말하기를, "달기는 관계한 일이 아니라. 네 형수가 짐의 뜻을 거스리다가 스스로


부끄러워 누에 떨어짐이라."하거늘 황비가 더욱 노하여 말하기를, “못난 임금아,


내 달기를 쳐 죽여 형수의 원수를 갚으리라."하고 손을 들어 달기를 칠새 손이


돌아가는 사이에 주의 뺨을 갈기니 주왕이 대로하여 달려들어 황비의 머리채를


잡아 뿌리치니, 가련하다 황비가 누 아래로 떨어져 또 뼈가 부서져 죽으니라.


 


  차설 무성왕이 형제와 의제 황명과 주기와 용환과 오겸과 아들 황천록, 천작,


천상과 더불어 이튿날 아침에 잔치하더니 가부인의 시비가 급히 와 엎드려 울며


고하기를, "부인이 적성루에 떨어져 죽으매 황낭랑이 주왕과 달기와 싸우시다가


주왕이 낭랑을 누 아래로 밀쳐 떨어져 뼈가 부서져 죽었나이다."하거늘 황천록은


나이 14세요, 황천작은 나이 12세요, 황천상은 나이 7세라. 모친이 누에 떨어져


죽었단 말을 듣고 방성대곡하니 그 경상은 차마 못 볼러라. 황비호의 두 아우와 4


장수가 크게 소리쳐 말하기를, "못난 임금이 형수씨의 자색을 보고 음란하고자


하매 형수씨가 누에서 떨어져 죽으니 낭랑이 형수씨 참사함을 보고 못난 임금과


다툰 일이라. 우리가 못난 임금을 쳐 죽이고 어진 임금을 세워 낭랑과 부인의


원수를 갚으리라."하고 여러 장수가 갑옷 입고 말타고 바로 남문을 향하여


달리거늘 황비호가 크게 소리쳐 말하기를, "우리 황문이 세세 충량 가문이라. 한


여자 때문에 반역됨이 불가하다."하니 황명이 말하기를, "형님이 하나를 알고


둘은 모르는도다. 옛적에 성탕이 하걸을 남소에 내쳤으니 못난 임금을 없이하여


만민의 도탄도 덜고 낭랑과 형수씨 원수를 갚겠으니 형님은 혼자 앉아 충절만 잘


지키시오."하거늘 비호가 묵묵히 말이 없더니 한소리를 크게 지르며 여러 장수를


분부하여 한 부대의 군대를 거느려 뒤를 따르라 하고, 갑옷을 입고, 오색 신우를


타고, 재도를 들고 내달으니 노룡(老龍)이 벽해를 뒤집는 듯하더라.


 


  차설 주왕이 가부인과 황비의 참사를 마음에 번뇌하여 달기를 원망하고


앉았더니 이 때 황명과 주기 등이 남문을 두드리며 외쳐 말하기를, "못난 임금아,


바삐 나오라. 네 황음무도하여 요비의 참소를 듣고 충량을 살해하고 만민을


도탄하며 신하의 아내를 음란하려 하니 네 죄 만단(萬端)에 낼지라. 바삐 나와


죄를 받으라."하니 수문장이 급히 주에게 고하되, "황비호 등이 반란하여 남문에


와 꾸짖고 욕하며 싸움을 청하나이다."하니 주왕이 대로하여 말하기를,


"필부(匹夫)가 어찌 이러 하리오?"하고 용봉 투구와 금쇄갑에 용포를 껴입고 팔보


안장에 소요마를 타고 참장 대도를 들고 호가의 어림군을 거느려 노기충천하여


나오니 그 위엄은 가위 만승지주(萬乘之主)러라. 황비호 등 여러 장수들이 일제히


내달아 접전하니 함성이 천지가 무너지는 듯하더라.


  아무리 용맹한들 진실로 독부(獨夫)라 어찌 여러 맹장을 당하리오? 수십여 합에


달아나거늘 황명과 주기 등이 남문으로 깨쳐 들어가 주를 베려 하거늘 황비호가


급히 불러 말하기를, "불가하다. 임금이 아무리 실덕(失德)한들 신하가 되어 어찌


차마 할 바이리오?"하고 군사를 거두어 왕부로 돌아와 일문 권내 천자의 제장


군졸을 다 거느리고 조가를 떠날새 여러 장수더러 말하기를, "장차 어디로


향할꼬?"


  다른 종이 말하기를, "임금이 바르지 못하면 신하는 외국으로 간다 하니, 이제


서기의 무왕이 성덕하나, 주왕이 황음무도하여 천하가 세 부분 가운데 그 둘을


두었으니, 원컨대 형님은 서기로 가사이다."


  비호가 길이 탄식하고 그 말을 따라 장졸을 거느려 서기로 향할새 맹진을 지나


황하수를 건너 남관을 나오더라. 황장에 이르러 부친 황곤과 합병하여 금계령을


넘어 기산에 다다르니 산천이 수려하며 남녀가 길을 따로 하고 인물이 번창하니


비호가 감탄하기를, "진실로 성인의 나라로다."하고 승상부에 나아가 당후관을


불러 조가의 황비호가 왔음을 고하니 자아가 청하거늘 비호가 처마 앞에 나아가


절하니 자아가 내려가 붙들어 당에 올려 사례하기를, "대왕을 멀리 맞지 못한


죄를 사하소서."하고 손님과 주인의 예로 자리를 잡으니 비호가 사례하기를,


"비호는 나라를 배반하는 신하라 어찌 승상과 자리에 앉으리이까?"


  자아가 말하기를, "전일 강상이 또한 대왕 치하에 있었거늘 어찌 이런 말씀을


하시니이까?"


  비호가 말하기를, "저는 가위 숲을 잃은 새라. 원컨대 한 가지를 빌려


깃들이기를 바라나이다."


  자아가 몸을 굽혀묻기를, "대왕이 무슨 일로 은나라를 버리고 서기로


오시니이까?"


  비호가 말하기를, "주왕의 포학(暴虐)이 날로 심한 중 정월 초하루를 당하여


저의 아내가 입궁 조하하더니 달기의 간계에 빠져 적성루에 떨어지니 저의 동생인


황비가 대로하여 달기를 쳐 죽이려 하다가 도리어 못난 임금에게 밀쳐 적성루에


떨어져 뼈가 부서져 죽었으니, 이러한 어지러운 나라에 오래 살 수 없어 어두운


데로서 밝음을 취하여 왔사오니 바라건대 승상은 용납하소서."


  자아가 말하기를, "대왕께서 오심이 서기의 큰 복이라. 대왕은 염려하지


마소서."하고 즉시 무왕께 아뢰기를, "조가의 무성왕 황비호가 못난 임금을


버리고 왔사오니 서기가 흥왕(興旺)할 징조로소이다."


  무왕이 말하기를, "이는 은왕의 친족이니 바삐 청하라."한데 황비호가 전 앞에


나아가 절하고 말하기를, "성탕의 신하 황비호로소이다."


  무왕이 말하기를, "장군의 덕의(德義)를 오래 사모하였더니 이제 서로 만나니


다행하도다."하고 잔치를 배설하여 서로 즐기니라.


 


  각설 진당관 총병 이정이 일찍이 곤륜산 도액진인의 제자가 되어 오행(五行)


둔갑술(遁甲術)을 배워 벼슬이 총병에 거하고, 부인 은씨가 3아들을 낳으니


장자는 금탁이니 오룡산 광법 천존의 제자요, 차자는 목탁이니 구궁산 백학동


보현진인의 제자요, 삼자는 나탁이니 잉태한 지 3년이 넘도록 생산을 못 하다가


부인이 한 꿈을 얻으니 한 도인이 와 쇠막대를 부인의 품에 넣거늘 놀라 깨달으니


한 꿈이라. 총병을 청하여 몽사(夢事)를 말할새 말이 마치지 못하여 한낱


고깃덩이를 낳으니 이정이 대경하여 한 칼로 찍은즉 가죽이 터지며 한 옥동자


나오며 방에 향취(香臭)가 진동하고 서기(瑞氣)가 집에 가득하더라. 오른손에 한


쇠막대를 쥐었으니 이름이 건곤권이니 건원산 금강동 태을진인의 조화러라.


이정이 대희하여 이름을 나항이라 하다. 이정의 부자 4인이 다 서기의 창업


공신이 되니라.


 


  화설 태사 문중이 홀로 은안전에 앉아 주상이 실정(失政)하여 전쟁이 사방에


일어남을 한하더니, 무성왕 황비호가 서기로 갔다는 말을 듣고 대경하여 주에게


아뢰고 상장군 조전에게 군사 3만을 거느리고 서기에 가 서백(西伯) 희발과


강자아를 문죄(問罪)하고 황비호를 생금(生擒)하여 오라 하니라. 조전이 제 아우


조로와 같이 감을 원하거늘 문태사가 허락하니 조전과 조로가 군사를 거느려


서기의 성 아래에 가 싸움을 청한대 자아가 말하기를, "성탕이 무슨 일로 와


침노하는가? 뉘 나가 허실을 탐지할꼬?"


  남궁괄이 그 말을 듣자마자 나와 말하기를, "제가 가겠나이다."


  자아가 허락하거늘 남궁괄이 한 무리의 군사를 거느려 성에 나가 진세(陣勢)를


벌이고 진 앞에 나가 소리치기를, "조장군아, 무슨 일로 천자가 군사를 서토에


보내셨는가?"


  조로가 답하기를, "네 주공이 천자의 명 없이 스스로 서왕이라 일컫고 또


반신(叛臣) 황비호를 거둔 고로 내 천자의 조서와 문태사의 장령을 받아 문죄하려


왔으니, 네 주공더러 반신 황비호를 매어 조가로 올리면 다른 죄를 사하려니와


그렇지 아니면 너희는 앙화를 면치 못하리라."


  남궁괄이 웃으며 말하기를, "조로야, 주왕이 황음무도하여 백성을 도탄에


빠뜨리며 강상(綱常)을 크게 무너뜨렸거니와 우리 주공은 법을 받들고 지경을


지키매 만민이 생업을 즐겨하니 천하가 귀순하여 삼분천하(三分天下)의


이분(二分)을 두었는지라. 이제 황장군이 그 처남 황낭랑과 아내 가씨의 참사함을


보고 참아 난방에 거할 수 없어 어둔 데를 버리고 밝은 곳으로 옴이 무엇이


불가하랴? 네 서기를 침범함이 재앙을 스스로 취함이니 바삐 돌아가라."


  조로가 대로하여 말을 달리고 칼을 춤추어 나오거늘 남궁괄이 맞아 싸워 30여


합에 조로의 기력이 진하여 남궁괄에게 사로 잡힌 바 되니 남궁괄이 조로를


결박하여 승상께 바친대 자아가 명하여 잡아들이니 조로가 무릎을 꿇지


아니하거늘 자아가 말하기를, "조로야, 네 스스로 잡힌 바 되어 꿇지


아니하느냐?"하니 조로가 눈을 부릅뜨고 크게 꾸짖기를, "나는 조정의 대신이요,


너는 불과 광주리 겼고, 국수 팔던 한 소민이라. 내 불행히 사로잡혔으니 죽을


따름이라 어찌 무릎을 꿇리오?"


  자아가 대로하여 감참관에게 명하여 조로를 베어 머리를 올리라 재촉하거늘


황비호가 급히 따라가니 벌써 조로를 베려 목을 늘였거늘 비호가 크게 소리


지르기를, "감참관아, 잠깐 칼을 머물라. 내 할 말이 있노라."하고 급히 조로를


붙들고 말하기를, "조장군아, 내 말을 들으라."하되 조로가 못 들은 체하고


죽기를 기다리거늘 비호가 또 불러 말하기를, "네 천시(天時)와 지리(地理)와


인화(人化)를 깨닫지 못하는도다. 주왕의 죄악이 천하에 가득하여 사방에 전쟁이


쉴 날이 없으니 패망(敗亡)이 조석에 있는지라. 서기의 무왕은 인덕이


요순(堯舜)을 짝할지라. 장군이 서기로 돌아오면 잠영(簪纓)이 만세를 누릴


것이어늘 회미함을 깨닫지 못하여 성명을 보전치 못하니 뉘우쳐도 미치지


못하리라."하거늘 조로가 비호의 간곡한 말을 들으매 정신이 명랑하여 말하기를,


"황장군아, 내가 강승상의 노여움을 지나치게 샀으니 용납지 않을까 하노라."


  비호가 말하기를, "장군이 귀항(歸降)할 마음이 있으면 내 당당히 승상께


권하리라."


  조로가 말하기를, "장군의 대은(大恩)을 입어 목숨을 보전하면


재생지덕(再生之德)이라. 어찌 명을 좇지 아니 하리이까?"


  비호가 자아에게 조로의 귀항할 뜻을 갖추어 말하니 자아가 말하기를,


"항복하는 자를 죽임은 예 아니라."하고 명령을 내려, 놓아 주라 하니 조로가


처마에 이르러 절하고 땅에 엎드려 고하기를, "제가 노둔(老鈍)하여 높으신


지위를 범하였으니 죄 마땅히 죽을 것이어늘 사하심을 입으니 감은(感恩)한 덕이


태산 같사이다."


  자아가 말하기를, "진심으로 돌아오면 다 한나라의 신하라. 무슨 죄가


있으리오?"


  조로가 말하기를,"저의 형 조전이 영중에 있사오니 제가 가 불러옴이 어떠


하니이까?"


  자아가 허락하니라.


 


  차설 조전이 조로가 사로잡혀 감을 보고 번민하더니 이윽고 조로가 돌아와 전후


소상을 말하고 같이 감을 청하거늘 조전이 말하기를, "우리 형제가 서기에


항복하면 부모처자가 다 죽음을 면치 못하리니 우리 마음이 안락(安樂)하랴?


차라리 충절을 지켜 죽음이 가하다."하더니 문득 한 계교를 생각하고 조로더러


여차여차하라 하니 조로가 승상부에 돌아와 자아께 고하기를, "가형의 말이


형제가 서로 순치되어 항복하면 여러 장수의 웃음거리가 되겠으니 승상이 당당히


한 장수를 보내어 부르시면 체면에 좋을까 하나이다."


  자아가 좌우를 돌아보아 말하기를, "뉘 조전을 청하러 갈꼬?"


  황비호가 말하기를, "제가 가리이다."


  자아가 허락하거늘 비호가 조로와 같이 탕영에 이르니 조전이 원문으로 나와


맞아 영에 들이더니 좌우에 도부수(刀斧手)가 달려들어 비호를 결박하거늘 비호가


크게 꾸짖기를, "이 간사한 역적아, 은혜를 원수로 갚는가?"하거늘 조전이


말하기를, "근력을 허비치 아니하고 반역을 잘 잡았다."하고 철끈으로 결박하여


함거(?車)에 싣고 급히 회군하여 오관을 향하고 달아날새 25리 용산 어귀에


이르니 포성이 일어나는 곳에 한 장수가 크게 소리쳐 말하기를, "조전아,


무성왕을 편히 모시라. 내 강승상의 명을 받아 여기 와 기다린 지


오래도다."하거늘 조전이 노하여 말하기를, "내 서기의 장졸(將卒) 하나도 상하지


아니하고 조정의 반적을 잡아가는데 너와 관계할 바 아니라."하고 칼을 춤추며


달아들거늘 신갑이 개간대부를 들어맞아 20합을 싸울새, 신면이 먼저 영중에


돌입하여 황장군을 구하여 말을 재촉하여 영을 뚫고 나오거늘 조로가 신면을 보고


계교에 빠진 줄 알고 달아나더라. 자아가 미리 알고 신갑과 신면과 남궁괄을


보냄이러라. 황비호가 말을 달려 나아가 조전을 사로잡아 내리고 크게 꾸짖어


말하기를, "이 예의도 없는 간사한 도적아, 강승상의 기이하고 오묘한 계교를


벗어날쏘냐?"하고 결박하여 성내로 들어 오니라.


 


  차설 조로가 목숨을 도망하여 걷다가 길을 잃어 이경(二更)쯤에 전면에


고함소리가 진동하며 화광이 충천하며 한 장수가 나오니 이는 남궁괄이라, 크게


외치기를, "이 간사한 조로야, 바삐 목을 늘여 내 칼을 받으라."


  벽력같이 소리를 지르니 조로가 말하기를, "남장군아, 잠시 목숨을 살려 주면


후일 결단코 보은하리이다." 궁괄이 대갈일성(大喝一聲)에 조로를 사로잡아 돌아


오니라.


  황비호가 승상께 말하기를, "승상의 모략이 아니런들 역당(逆黨)의 독한 해를


면치 못할 뻔하였나이다."


  자아가 말하기를, "조로의 동정이 간사하기로 내 깊이 생각하여 3 장수를


보내었노라."하니 여러 장수가 탄복하더라.


  신갑, 신면, 남궁괄이 조전과 조로를 잡아 분부를 기다리거늘 승상이 조전


형제를 꿇리고 크게 꾸짖기를, "필부가 못된 꾀를 써서 나를 속이느냐?"하고


군정관을 명하여 내어 베라 하니 조로가 부르짖어 원통함을 애걸하니 자아가


말하기를, "필부 형제가 간사한 계교로 충량을 해하여 공을 바라다가


사로잡혔으니 무슨 말을 하느냐?"


  조로가 말하기를, "형님의 말이 우리 부모가 다 조가에 있으니 우리 형제가


항복하면 부모는 다 앙화를 받겠다 하기로 적은 계교를 베풀다가 승상에게


죽사오니 사정이 참으로 원통하여이다."


  자아가 말하기를, "그럴진대 나더러 의논하면 너희 식구를 무사를 시켜 옮겨


오게 할 것을, 너희가 이런 마음을 먹었느냐?"


  조로가 답하기를, "제가 노둔하여 원대한 꾀가 없어 이 지경을


당하였나이다."하고 눈물이 비오듯 하거늘 자아가 말하기를, "네 진정 부모가


있느냐?"


  조로가 답하기를, "저의 일은 황장군이 아나이다."


  자아가 황장군더러 물으니 대답하기를 과연 있다 하거늘 자아가 말하기를,


"그러하면 네 형 조전은 두고 너만 편지를 가지고 이리이리하여 네 가족을


데려오라."하니라.


 


  화설 조로가 밤새 달려가서 조가에 가 문태사를 보니 태사가 묻기를, "네 어이


급히 오느냐?"


  조로가 답하기를, "군사가 서기에 이르러 저의 형제가 서기의 장수 남궁괄,


신갑, 신면 등으로 연일 접전하매 이겼다 졌다 하여 승패를 가르지 못할 사이에


사수관 한영이 양식을 보내주지 아니하여 삼군이 주리니 양식은 삼군의 목숨과


같은지라. 제가 부득이 밤새 달려서 왔으니 바라건대 태사는 양식과 군사를


더하여 주셔야 상국의 위엄을 빛내고 황비호를 사로잡아 오겠삽나이다."


  태사가 한참을 말없이 생각하다가 말하기를, "전에 화패와 영전이 있거든


한영이 어찌 양식을 보내지 아니하던고?"하고 즉시 3,000인마와 양식 1만 석을


점검하여 조로를 주며 말하기를, "바삐 밤을 틈타서 가라. 나는 다시 대장을


점고하여 같이 서기를 파하리니 지체하지 말라."하니 조로가 양식과 인마를


거느리고 가만히 가족을 데리고 급히 조가를 떠나 서기로 가니라.


 


  화설 문태사가 조로를 보낸 지 삼사 일 후 조로가 가족을 데려갔단 말을 듣고


자연 심사 번뇌하여 한 괘를 얻고 책상을 치며 소리 지르기를, "내가 간계에


빠졌도다."하고 기운이 막혀 말을 못 하다가 문득 생각하고 총룡관 총병


장계방으로 10만 병을 발하여 서기를 칠새 신위대장군 구린으로 교대하여


청룡관을 지키게 하고 화패 영전을 주면서, "밤을 틈타서 가라. 내 또한 뒤를


이어 가리라."하니 장계방이 영을 듣고 군사 10만을 조발하여 호호탕탕히 나아가


서기성 5리에 진을 치니 대포 놓고 고함지르는 소리가 천지에 진동하더라.


 


  화설 서기가 상부에 보고하기를 청룡관 총병 장계방이 10만 인마를 거느려 남문


근처에 안영하였다 하거늘 자아가 황비호더러 묻기를, "장계방의 용병이


어떠하던가?"하니 황비호가 대답하기를, "장계방이 좌도 방술사라. 화술(火術)로


사람을 상하되 진에 나아가 서로 대적할 즈음에 성명을 불러, '아무개야, 말을


아니 내리고 어느 때를 기다리리오?'하면 말에서 내리는 줄 모르고 저절로 내려져


사로잡히나니 여러 장수에게 분부하되 성명은 알리지 말고 싸우게 하소서."하니


자아가 응낙하고 싸움을 돋우니 장계방이 크게 진문을 열고나오니 은갑과


은투구에 장창을 들고 흰 말을 타고 나오니 그 형세가 추상같더라. 자아가 청총마


위에 도복을 입고 홍안백발(紅顔白髮)에 손에 자웅 보검을 쥐고 나오니 진실로


선풍도골(仙風道骨)이라.


  장계방이 바라보고 심중에 남몰래 칭찬하사 자아를 가리키며, "강상아, 네


은나라 신하로 배반하고 희발을 도와 반신 황비호를 받으며 또 못된 계교를 써


조로를 사로잡으니 그 죄가 분명한지라. 바삐 황비호와 조전 형제를 보내라.


그렇지 아니하면 옥석(玉石)이 함께 타고 말리라."


  자아가 웃으며 말하기를, "장군의 말이 옳은 듯하나 어찌 듣지 못하였는가?


어진 신하는 임금을 가리고 어진 새는 나무를 가린다 하니 황장군을 받음이


무엇이 불가하랴. 이제 천하가 다 반하되 우리 군신은 법을 지키어 신하의 도리를


다하거늘 이제 군사를 발하여 침범하느냐?"하는데 계방이 바라보니 황비호가 자아


곁에 있거늘 크게 소리치기를, "반적 황비호야, 내 칼을 받으라." 하고 비호를


취하니 비호가 맞아 싸워 10여 합에 계방이 크게 소리 지르기를, "황비호야, 말을


내리지 아니하고 다시 어느 때를 기다릴꼬?"하니 비호가 자기 안장에 내리는 줄


모르고 내리거늘 주기가 나는 듯이 계방을 취하니 비표 등이 비호를 구하여 돌아


오니라. 계방이 주기의 성명을 부르니 주기가 말에서 내려지거늘 계방이 사로잡아


가고, 남궁괄은 풍임과 싸우더니 풍임이 입으로 검은 연기를 토하니 변하여 큰


구술이 되어 남궁괄을 때려 말에서 내리쳐 사로잡아 황비호와 한데 가두어 조가로


보내어 처결하려 하더라.


 


  화설 이전에 진당관 총병 이정의 제삼자(第三子) 나탁이 건원산 금강동


태을진인의 제자가 되었더니 하루는 진인이 나탁더러 말하기를, "이제 은왕이


실덕(失德)하여 천하가 분분하니 네 바삐 하산하여 서기에 가 네 사숙 강상을


돕고 성주를 섬겨 만민도탄을 건져 공을 세우라."


  나탁이 마음속으로 크게 기뻐하여 사부(師傅)를 하직하고 하산할새


풍화륜(風火輪)을 타고 화첨창을 끌고 표괴랑을 차고 서기로 가 승상부를 찾아


자아 앞에 나아가 절하여 말하기를, "사숙이시어, 제자가 왔나이다."


  자아가 묻기를, "네 뉘뇨?"


  나탁이 답하기를, "제자는 건원산 금강동 태을진인(太乙眞人)의 도제(徒弟)


나탁이라. 사부께서 명하시되 사숙을 도와 공을 이루라 하시기로 왔나이다."


  자아가 대희하여 장계방의 도술로 양장이 사로잡힌 말을 하니 나탁이 말하기를,


"사숙은 과히 염려 마소서. 제가 한번 나아가 시험하리이다."하고 풍화륜을 타고


진전에 나서 외쳐 말하기를, "적장은 바삐 나와 자웅을 결하자."하니 탕진으로서


한 장수가 나와 맞거늘 나탁이 말하기를, "네 장계방이냐?"


  대답하기를, "나는 장총병의 선행관 풍임이어니와, 너는 누구냐?"


  나탁이 말하기를, "나는 강승상의 사질 나탁이라. 네 죽기를 아끼거든 바삐


장계방을 내어보내라."


  풍임이 대로하여 낭아곤(狼牙棍)을 휘두르며 달겨들거늘 나탁이 맞이하여 수십


합을 싸우더니 풍임이 나탁을 향하여 입으로 검은 연기를 토하니 변하여 사발만한


구슬이 되어 나탁의 낯을 갈기거늘 나탁이 웃으며 말하기를, "네 술법이


정도(正道) 아니라."하고 손을 들어 한번 가리키니 그 구슬이 저절로 스러지거늘


건곤권을 들어 풍임의 어깨를 치니 근골이 끊어졌으나 겨우 목숨을 도모하여


달아났다.


  계방이 대로하여 창을 끌고 나와 나탁을 가리켜 크게 꾸짖기를, "나의 선행관을


때린 나탁이냐?"


  나탁이 크게 꾸짖기를, "네 이름을 부르면 말에서 내리리라 하니 내 이름을 백


번이라도 부르라."하고 달아들거늘 계방이 크게 소리 지르기를, "나탁아,


수레에서 내리지 아니하고 다시 어느 때를 기다리리오?"하되 나탁이 내려지지


아니하니 연하여 3번을 부르되 아니 내려지거늘 계방이 크게 놀라 말하기를,


"사부께서 비밀히 준 술법이 다 허사로다."하고 방황할 즈음에 나탁이 건곤권으로


왼편 어깨를 치니 근골이 끊어져 달아나거늘 나탁이 탕영 중에 돌입하여 감옥을


깨치고 주기와 남궁괄을 구하여 돌아왔다.


 


  차설 장계방과 풍임이 패잔병을 거두어 도망하고 상처를 치료하더니 그 날 밤에


황비호, 나탁, 남궁괄, 주기 등이 충돌하여 풍임을 베고 장계방을 취하니


장계방이 하늘을 우러러 통곡하고 목 찔러 죽으니라.


 


  화설 문태사가 장계방이 전쟁에 패망함을 듣고 대로하여 중장을 모아 의논하되,


"이제 강상이 이렇듯 강성하니 뉘 나라를 위하여 서기를 쳐 멸할꼬?"


  말이 맞지 못하여 좌군 상장군 노웅이 말하기를, "제가 원컨대 한번 북을 쳐


나아가, 서기를 토평(討平)하리이다."하니 문태사가 말하기를, "노장군이 연세


많음을 염려하노라." 하니 노웅이 말하기를, "장계방과 풍임이 다 필부지재라.


시무(時務)를 모르고 패망하였나니 무릇 장수가 되어 군사 쓰는 법이 먼저


천시(天時)를 살피고 다음으로는 지리(地理)를 보고 나중에는 인화(人和)를


깨달아 능히 강하며 능히 부드러우며 위태한 일을 아니 하며, 화를 복이 되게


하며 잃은 것도 얻게 하며 죽은 것도 살게 하며 변화 불측하여


지피지기(知彼知己)라야 가히 만전만승(萬戰萬勝)이니, 이것이 장수가 되는


도이라. 제가 원컨대 한번 나아가 공을 이루리이다."하니 태사가 말하기를,


"장군이 비록 늙었으나 장수의 재질이 이러함을 몰랐도다."하고 주왕께 아뢰고


비중과 우혼으로 참군(參軍)을 삼고 군사 5만을 발하여 행군케 하니라.


 


  화설 이 때는 하절(夏節)이라. 군사들이 철갑을 입고 더위를 견디지 못하여


겨우 하루 20리씩 행하매 노웅이 군사를 재촉하여 서기에 다다라 나무 그늘을


의지하여 용기를 세우니 체탐이 승상부에 알린대 자아가 무길과 남궁괄로 하여금


군사 5,000씩 거느려 기산 영산에 진을 쳐 도적을 막으라 하고, "장졸이 다


털옷을 한 벌씩 가지고 있다가 내 명대로 하라."하니 두 장수가 명을 듣고 나오며


이르되, "이 때 이렇게 덥거늘 털옷은 무엇에 쓰려 하는고?"하고 삼군이 다


의혹하되 장수의 명을 어기지 못하여 가지고 가니라.


  자아가 황비호더러 말하기를, "그대는 500명을 거느려 기산 동녘 정결한 곳에


제단을 모으되 높이가 한 길은 하고 그 위에 수백 명이 들어가게 하여 내일 닭이


울 때에 계교를 행하게 하라."하고 그 날 삼경에 자아가 목욕재계(沐浴齋戒)하고


향촉(香燭)을 밝히고 하늘에 제하고 머리 풀고 발벗고 장대에 올라 인검(印劍)을


짚고 곤륜산을 향하여 네 번 절하고 부적을 사르더니 이윽고 운무(雲霧)가


사면으로 일어나며 바람이 크게 부는지라. 제장이 다 기뻐하며, "이런 더위에


북풍이 일어나 더위를 없이하니 이는 하늘이 우리로 하여금 성공케


함이라."하더니 백설이 분분하여 정히 엄동(嚴冬)같더라. 날이 밝으매 자아가


다시 장대에 올라 행황기를 두르니 운무(雲霧)가 걷히고 백일(白日)이


조요(照耀)한지라. 대소 장졸이 다 이로되, "승상의 신기묘산(神技妙算)은 비할


데 없다."하더라.


  자아가 남궁괄과 무길을 불러, "너희는 각각 도부수 20명씩을 거느리고 탕영에


들어가 적장을 잡아오라."


  양장이 명을 듣고 가니라. 이 때 탕영의 장졸이 더위를 견디지 못하다가 바람이


일어남을 보고 서로 즐기더니 문득 대풍이 일며 백설이 날리니 도리어 추움이


엄동 같은지라. 삼군이 베옷과 철갑으로 어찌 견디리오? 장졸이 다 얼어 죽으니


혹 눈에 파묻혀 죽으며, 노웅, 비중, 우혼 3장수는 다 얼음 속에 묻혔거늘


남궁괄이 도끼로 얼음을 깨고 3장수를 잡아내어 수레에 싣고 본진으로 돌아오니,


3장수가 얼었다가 녹으매 점점 인사를 차리며 사지를 움직여 일어나 앉으며


살펴보니 사면에 금갑(金甲) 홍포(紅袍)한 장수가 보검을 들고 둘렀는지라.


  3장수가 괴이하게 여겨 어찌할 줄 모르다가 마루 위를 바라보니 한 사람이


홍안백발에 머리에 윤건(輪巾)을 쓰고 몸에 도복을 입고 손에 행황기를 들고


앉았으니 곧 강승상이라. 노웅이 소리 지르기를, "네 요괴로운 술법으로 천조


대원수를 이다지 곤욕하느냐?"


  자아가 꾸짖기를, "네가 천시를 모르고 무고히 군사를 일으켜 서기를


침노하느냐?"


  비중과 우혼은 꿇어 엎드려 아무 말도 못 하고 오직 노웅이 일어나 앉으며 눈을


부릅뜨고 꾸짖기를 마지아니하거늘 자아가 또 꾸짖기를, "우리 주공이 어진 덕을


행하여 만민이 열복(悅服)하고 삼분 천하에 이분이 서기로 왔으니 우리 주공이


요망한 무리를 쓸어버리고 도탄에 든 백성을 건지려 하거늘 너희들이 어찌 천시를


모르고 스스로 죽기를 취하느냐? 바삐 항복하여 죽기를 면하라."


  노웅이 크게 꾸짖기를, "강상의 늙은 역적아, 네가 국록을 먹고 벼슬이 태우에


이르렀거늘 어찌 임금의 은혜를 배반하고 서기를 도와 간사한 술수로 우리에게


곤욕을 주느냐? 내가 이미 네게 잡혔으니 다만 죽을 따름이라."하고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으니 자아가 굴복하지 않을 줄 알고 좌우를 호령하여 내어 베니라.


 


  차설 문태사가 승상부에 한가히 앉았더니 사수관 총병 한영이 글월을 올려


노웅이 전군을 함몰하였다 하였거늘 태사가 상을 치며 크게 꾸짖기를, "서기의


강상이 이렇듯 조정을 능멸할 줄 뜻하였으리오?"하고 즉시 주왕께 아뢰기를,


"서기의 강상이 여러 번 군사를 죽이고 장수를 공격하여 천자께 항거함이


태심(太甚)하오매 이번에 제가 서기를 쳐 멸하겠사오니, 바라건대 폐하는 모든


일을 잘 살피시고 주색을 멀리하시고 어진 정사를 닦으소서."하고 군사 30만을


발하여 조가를 떠나 황하를 건너 오관을 지나 서기성 남문에 이르러 공격할새


일성 대포 소리와 삼군의 고함소리가 천지에 진동하더라.


  체탐이 승상부에 보고하기를 문태사가 30만 대병을 거느려 남문 밖에


결진하였다 하거늘 자아가 말하기를, "내 조가에 있을 때 문중을 보지 못하였더니


이제 저의 기율(紀律)을 보리라."하고 중장으로 더불어 적루상에 올라 바라보고


감탄하기를, "평일 문중이 장수의 재목(材木)이 있다 하더니 과연이로다."하고


승상부에 돌아와 제장을 분배할새 한 도사가 자아의 앞에 나와 절하여 말하기를,


"제자는 옥천산 금화동 옥정진인의 제자 양진이옵더니 사부의 명을 받아 사숙의


좌우에서 도우려 왔나이다."하더니 이윽고 또 한 젊은 도사가 와 절하여


말하기를, "제자는 옥룡산 광법천존의 제자 금탁이옵더니 사부의 명을 받아


사숙을 보좌하러 왔나이다."하더라.


  또 한 젊은 도사가 적장의 머리를 들고 들어와 배알하거늘 자아가 묻기를, "저


젊은 도사는 누구인가?"하니 그가 대답하기를, "제자는 구궁산 백학동 보현진인의


제자옵더니 사부의 명을 받아 오다가 장계방의 장수 풍후패를 만나 목을 베어


왔나이다."하니 금탁이 곁에 있다가 고하기를, "이는 제자의 아우


묵탁이로소이다."


  자아가 크게 기뻐하며, "저 문태사는 장계방과 노웅의 무리가 아니라 걱정이


무궁하더니 이제 이문의 3형제가 다 서기로 돌아오니 이는 주공의


홍복(洪福)이라."하더라.


 


  차설 자아가 성문을 크게 열고 대포를 쏘니 대소 장졸이 대오를 정제하여


나오니 좌편은 나탁이 풍화륜을 타고 화첨창을 끌고 다음은 양진, 금탁, 목탁,


한득룡, 설악호요, 우편은 남궁괄, 무길, 신갑, 신면, 황천화요, 가운데는 자아가


사불상(四佛像)을 타고 뒤에는 황비호가 오색 신우를 타고 나오니 그 위의가


엄숙하더라. 탕영 중에서도 대포 소리에 등충, 신환, 장절, 조영길, 임여겸 등이


좌우에 나열하고 용봉기 아래 문태사가 흑기린을 타고 나오며 손에 금철(金鐵)을


들어 자아를 가리켜 말하기를, "강승상아, 네가 곤륜산의 명사로 사리를 모름은


어찌 된 일이뇨?"


  자아가 대답하기를, "내 옥허동 문하로 어찌 천명을 어기리오? 법을 받들어


공번되이 지켜 가며 어지러운 정사를 아니하매 백성이 평안하고 만물이


무성하거늘 무엇이 사리를 모르리오?"


  대사가 말하기를, "네가 천자의 명 없이 네 임금이 스스로 서서 무왕이라 하며


반신 황비호를 받으니 임금 배반이 아니며 문죄하는 군사와 관리를 살육하니


대역이 아니냐?"


  자아가 웃으며 대답하기를, "우리 임금이 스스로 선 것은 아들이 아비를 잇는


것이니 무엇이 불가하며 임금이 스스로 윤리를 멸함으로 제후가 다 반함이니


허물이 신하에 있음이 아니요, 무성왕을 받은 것은 임군이 바르지 못하면 신하가


외국으로 감이 예에 당연한 일이거늘 임금이 스스로 반성할 줄은 모르고 신하만


꾸짖음이 부끄럽지 아니하며, 조정 명관과 군사가 다 자취하여 죽음이요, 서기서


먼저 기병(起兵)함이 아니라. 태사의 이름이 사방에 떨쳤는지라. 이제 망녕되이


행동함이니 미련한 뜻에는 태사가 군사를 돌이켜 각각 지경을 지켜 좋은 낯으로


봄이 어떠하뇨? 병가의 승부를 가히 알지 못하매 청컨대 태사는 3번 생각하여


위엄을 덜게 마르소서."


  태사가 한번 들으매 붉은 빛이 얼굴에 가득하다가 황비호가 보독기의 아래에


섰음을 보고 크게 소리하여 말하기를, "황비호야, 나를 나와 보라."하니 황비호가


얼굴을 보기가 어려우나 앞을 향하여 몸을 굽혀 가로되, "제가 태사를 이별한 지


수년에 오늘 서로 보니 원통함을 비로소 씻으리로다."하니 태사가 꾸짖어


말하기를, "만조 부귀가 다 네 가문에 있거늘 일조에 반하여 강상을 도와


조정명관을 살육함은 웬일이뇨?"하고 미처 대답지도 않아서 한 대장에게 명하여


반신을 잡으라 하니 좌초대장군 등충이 말을 달려 독기를 두르며 나와 황비호를


취하니 비호가 오색 신우를 놓아 맞으니 장절이 또 창을 끌고 나와 등충을


돕거늘, 주의 영중에서 대장 남궁괄이 나와 대적하니 도영이 말을 달려나와


돕거늘 무길이 나와 대적하니 여섯 장수가 서로 어우러져 싸우니 북소리와 함성이


천지에 진동하더라.


  탕영 중에서 한 장수가 나오니 이 장수는 신환이라. 두 어깨에 날개가 있으니


저의 3장수가 이기지 못함을 보고 두 날개를 떨쳐 반공에 솟았다가 철퇴를 들고


내려와 자아를 취하니 황천화가 옥기린을 타고 두 자루의 은철퇴를 들고 신환을


막으니라.


  태사가 흑기린을 타고 자아를 취하니 자아가 사불상을 타고 서로 맞아 싸우니


두 마리 용이 벽해를 뒤눕는 듯 두 마리 용이 공산(空山)에서 밥을 다툼과


같더라. 문태사가 쌍편을 공중에 던져 날다가 자아의 어깨를 치니 자아가 말에서


내려 떨어지니 문태사가 머리를 베려 할 즈음에 나탁이 풍화를 타고 창을 두르며


크게 외쳐 말하기를, "나의 사숙을 해치지 말라."하고 자아를 보호할 즈음에


신갑이 달아들어 자아를 구하여 돌아오고 나탁은 태사와 더불어 4-5합을 싸우더니


태사가 신편을 들어 나탁을 치니 나탁의 풍화륜에 떨어지거늘 금탁이 내달아


보검을 들어 금편을 막으니 태사가 대로하여 쌍편을 들어 금탁을 치니 양진이


창을 들어 태사를 찌르니 태사가 또 쌍편을 들어 양진의 정수리를 치되 조금도


요동이 없거늘 태사가 크게 놀라, "서기에 이러한 이인이 있음을 깨닫지


못하였다."하더라. 자아가 또 진전에 나와 외쳐 말하기를, "오늘 너와


자웅(雌雄)을 결하자."하고, 양진을 명하여 문중을 잡아 오라 하니, 양진이


태사를 취하니 등충이 말을 놓아 대적하거늘, 나탁이 나와 등충을 취하니 장절과


도영 두 장수가 나와 막거늘 무길과 남궁괄이 나와 대적하니 신환이 날아오거늘


황천화가 막자르니 태사가 자웅편을 들어 자아를 취하니 자아가 신편으로 자편을


쳐 두 조각에 내니 태사가 크게 소리 지르기를, "내 보패를 상하니, 내 너와


사생을 결단하리라."하고 달아들거늘 자아가 신편을 들어 태사를 치니 태사가


말에서 떨어지거늘 옆에 있던 여경이 구하매 태사가 토둔법을 행하여 달아나니


자아가 일진을 대살하고 돌아오다.


 


  차설 자아가 중장으로 더불어 의논하기를, "이제 이긴 끝을 타 밤에 탕영을


겁칙함만 못하다."하고 여러 장수를 분부하여 나아갈새 나탁, 금탁, 무길,


남궁괄로 먼저 탕영을 겁칙하라 하고, 황비호 부자와 신면, 신갑으로 뒤를


접응하라 하고, 양진으로 적진 우영에 양식을 불지르라 하고, 그 날 밤 삼경에


물밀듯 들어가니 태사가 불우지변(不遇之變)을 만나 해심 중에 들어 어찌할 줄


모르더니, 후영에 불이 일어남을 보고 더욱 놀라 달아날새, 등충, 장절 등이 길을


앗아 동을 바라고 달리더니 나탁, 금탁, 남궁괄, 무길 등이 크게 외쳐 말하기를,


"문중아, 닫지 말라."하고, 고함 소리가 천지에 진동하니 태사가 어찌할 줄


모르더니 신환이 공중으로부터 내려와 구하여 달아 나니라.


 


  화설 종남산 옥계동 운중자가 하루는 뇌진자를 불러 말하기를, "뇌진아, 시방


태사 문중이 서기를 정벌하니 네 바삐 하산하여 서기에 가 네 황형 무왕 희발을


보고 네 사숙 강자아를 도와 공을 세우라."하거늘 뇌진자가 사부를 하직하고


종남산을 떠나 두 날개를 떨치니 한소리 바람과 우레가 일어나며 순식간에 서기의


지경에 이르러 멀리 바라보니 문태사의 패병이 오거늘 일진을 시살하고 서기성에


들어 승상부에 나아가 자아께 배알하니 자아가 말하기를, "도동(道童)이 어디


있나뇨?"


  뇌진이 답하기를, "제자는 종남산 운중자의 문하 뇌진이옵더니 사부의 인(印)을


받아 황형 무왕도 뵈옵고 사숙을 도와 공을 이루라 하시기에 오다가 문태사의


일군을 만나 시살하고 왔나이다."


  자아가 대희하여 데리고 무왕께 들어가 아뢰기를, "전날 선왕이 연산에서


거두신 뇌진자라. 종남산에서 도를 배우더니 이제 왔나이다."


  무왕이 명하여 볼새 뇌진자가 나아와 절하고 황형이라 일컬으니 무왕은


어제(御弟)라 일컫고, "전에 선왕이 현제의 공으로 오관을 무사히 나오신 후 현제


도로 종남산으로 갔다 하시더니 이제 다시 서로 모이니 이러한 다행이 없다."하고


잔치를 배설하여 서로 즐기더라.


 


  차설 문태사가 패잔 인마를 거두어 기산 70리에 진지를 차리고 길이


탄식하기를, "내 정벌하기를 여러 해에 이르렀으되 패한 바 없더니 이제 하늘이


성탕을 망케 함이라. 내 선왕의 탁고(託故)하심을 받아 적담충심으로 천심을


돌리지 못하니 다 주상의 실정한 연고라 장차 어찌하리오?"하고 패잔군을 데리고


마을마다 걸식하여 청룡관을 찾아오다가 종남산 운중자의 화공(火攻)에 죽으니


가련타, 성탕의 수상 충신이 일조에 나라를 위하여 몸을 버리니라.


 


  차설 사수관 총병 한영이 문태사가 전망함을 조정에 보하니 주왕이 대로하여


삼산관 총병 등구공에게 명하여 황모백월을 주어 서기를 치라 하고 조서를 내리니


등구공이 이날 기병하여 서기의 성하에 이르니 자아가 군사를 거느려 성에 나서


대진할새 탕영 중으로 한 장수가 나와 싸움을 돋우니 남궁괄이 응성 출마하며


크게 소리지르기를, "은나라 장수는 뉘뇨?"하니 대답하기를, "나는 등원수의


정인(情人) 선행관 태란이로다."하고 칼을 춤추어 달아들거늘 남궁괄이 맞아 싸와


수십 합에 태란에게 패한 바 되어 돌아 오니라. 이튿날 등원수가 진전에 나와


싸움을 청하거늘 자아가 또 진전에 나서 몸을 굽혀 말하기를, "등원수야, 이제


천하가 주나라로 돌아옴을 가히 앉아 헤아릴지라. 속히 군사를 돌이켜 각각


변경을 지키어 생령(生靈)으로 도탄을 없게 함이 어떠하뇨?"


  등구공이 대로하여 말하기를, "네가 곤륜산 명사로 인신(人臣)의 예를 알지


못하고 하늘을 거슬러 크게 강상을 무너뜨리니 그 죄 어떻다 하리오?"하고 말을


달려 자아를 취하니 나탁이 풍화륜을 타고 건곤권을 들어 등구공의 어깨를 쳐


골절이 끊어져 거의 낙마할 즈음에 태전이 구하여 영에 돌아와 신음 소리가


그치지 아니하거늘 소저 선옥이 아비 상함을 보고 마음에 번민하여 아비에게


품하기를, "소자가 한 번 나아가 부친의 원수를 갚으리이다."


  구공이 말하기를, "자세히 조심하라."하니라. 소저가 본부병을 거느리고 성


아래에 와 싸움을 청하거늘 나탁이 그 소리를 듣고 말을 달려 풍화륜을 타고 나와


크게 소리쳐 말하기를, "네가 규중 처녀로 얼굴을 드러내어 부끄러움을 모르고


감히 장부와 싸움을 돋우느냐?"하고 화첨창을 들고 나오거늘 선옥이 말하기를,


"오는 장수가 누구인가?"


  나탁이 말하기를, "나는 강승상의 선행관 나탁이라."하니 선옥이 말하기를,


"너는 내 부친을 상한 원수라. 오늘날 내 칼을 받으라."하고 이를 갈며 낯빛이


붉으며 말을 놓아 칼을 춤추어 나탁을 취하니 나탁이 맞아 싸워 수합에 선옥이


생각하되, '내 먼저 하수하리라.'하고 거짓 패하여 닫거늘 나탁이 생각하되,


'과연 일개 여자라 큰 싸움을 견디지 못한다.'하고 따르더니 선옥이 몸을


돌이키며 오광석을 들어 나탁의 뺨을 치니 나탁이 패하여 돌아와 자아께 패한


연유를 고하니 자아가 말하기를, "이후는 여자도 경적지 말라 하더라."


  이튿날 등선옥이 또 와서 싸움을 돋우니 황천화가 가기를 원하거늘 자아가


허락하니 천화가 옥기린을 타고 성에서 나와 대진하니 등선옥이 말을 나는 듯이


앞에 와 묻기를, "오는 장수의 이름이 무엇인가?"


  대답하기를, "나는 무성왕의 장자 황천화여니와, 네 어제 돌로 내 도형을 때린


등선옥이냐?"하고 철태를 들어 선옥을 취하니 선옥이 두어 합을 싸우다 닫거늘


천화가 따르더니 선옥이 머리를 돌이키며 오광석으로 천화의 면상을 때려 거의


떨어질 뻔하다가 돌아 오니라.


  이튿날 등선옥이 또 성에 와 싸움을 돋우거늘 자아가 말하기를, "뉘 나가


대적할꼬?"


  양진이 곁에 있다 용수호를 대하여 말하기를, "사형이 먼저 나가 대적하면 내


뒤를 이어 접응하리라."하니 용수호가 허락하고 두 장수가 성문에서 나오거늘


선옥이 바라보니 용수호의 형상이 괴이 흉악하여 혼불부체하나 크게 불러


말하기를, "오는 장수는 뉘뇨?"


  용수호가 답하기를, "나는 강승상의 문도 용수호라. 특별히 너를 사로잡으러


왔노라."


  선옥이 돌로 때리니 용수호가 소반만한 돌로 가로막으니 때리는 돌이 부서져 재


같으며 벽력소리가 나거늘 선옥이 말을 돌이켜 닫거늘 용수호가 따르니 선옥이


머리를 돌이키며 돌을 들어 용수호의 목줄기를 때리니 용수호가 말에서


떨어지거늘 선옥이 나는 듯이 달려들어 용수호의 목을 베거늘 양진이 크게


소리지르기를, "나의 사형을 상치 말라."하고 창으로 찌르니 선옥이 수합을


싸우다가 닫더니 또 돌로 양진의 뺨을 때리되 양진이 무한한 변화라 맞지


아니하거늘 선옥이 연하여 때리되 맞지 아니하고 효천견을 놓아 선옥의 목을 물어


고기 한 덩이를 떼었거늘 선옥이 거의 말에서 떨어질 뻔하다가 진으로 와 아픔을


견디지 못하니 등구공이 여아의 상함을 보고 더욱 감상하더라.


  양진이 용수호를 구하고 돌아오니 자아가 용수호의 상함을 더욱 근심하더라.


 


  차설 등구공의 부녀가 너무 상하여 아픔을 견디지 못하여 앓는 소리가 장 밖에


들리더라. 이 때 독량관 토행손이 양식을 싣고 들어와 청령하니 장내에


통성(痛聲)이 크게 들리거늘 토행손이 장에 나아가 등구공에게 문안하니 이구공이


나탁에게, "어깨를 상하여 근골이 끊어져 낫지 못하노라."하니 토행손이


말하기를, "류장의 상처는 염려 마소서."하고 호로병 속에서 단약 한 개를 내어


물에 풀어 바르며 마시게 하니 한 시각에 여상(如常)하더라. 토행손이 또 들으니


장 뒤에서 앓는 소리가 나거늘 토행손이 묻기를, "이 어떤 사람의 통성이니이까?"


  구공이 말하기를, "내 딸 선옥이 또한 적장에게 상하여 앓노라."


  토행손이 말하기를, "이 어렵지 아니 하니이다."하고 또한 단약을 내어 전과


같이 하니 즉시 아픔이 그쳐 여상한지라. 구공이 대희하여 잔치를 배설하여


중강으로 더불어 즐길새 토행손이 묻기를, "자아와 몇 번이나 싸워 계시니이꼬?"


  구공이 말하기를, "여러 번 싸워 다 패하였노라."


  토행손이 웃으며, "당시에 주장으로 저를 쓰시던들 서기를 벌써


평복하였으리라."하니 구공이 생각하되, '이 사람이 필경 도술이 있으리라.'하고


선행관의 인을 주어 선봉을 삼으니 토행손이 본부군을 거느리고 서기의 성하에


이르러 크게 소리 지르기를, "나탁아, 나와 승부를 결하자."하거늘 나탁이 응성


출마하여 보니 신장(身長)이 사 척 남짓한 아이라.


  나탁이 하늘을 보고 웃으며 말하기를, "네 성명이 무엇이냐?"


  토행손이 대답하기를, "나는 등원수의 선행관 토행손이로다."하고 달려들거늘


나탁이 풍화륜에 올라 건곤권을 두르니 토행손이 앞뒤로 뛰어 달리되 혹 나탁의


다리 사이로도 왕래하니 나탁이 병기를 쓸 새 없어 일신에 땀이 흐르더라.


토행손이 외쳐 말하기를, "네 몸이 나보다 크매 내 재주를 발하여 공을 이를 수


없으니, 네 수레에서 내려 승부를 결하자."하거늘 나탁이 토행손이 작음을


업신여겨 수레에 내려 싸우더니 토행손이 곤선승을 공중에 던져 나탁의 일신을


결박하여 잡아오니 등구공이 명하여 후영에 가두어 서기를 평정한 후 조가로


보내어 공을 보하리라 하더라.


 


  차설 탐매가 나탁이 사로 잡힘을 고하니 자아가 대경하여 여러 장수와 토행손을


잡을 의논을 하더라. 이튿날 토행손이 또 싸움을 청하거늘 황천화가 옥기린을


타고 나와 크게 꾸짖기를, "이 축생(畜生)이 감히 내 도형을 상한


토행손이냐?"하고 철퇴를 두루며 나오니 토행손이 빈철곤을 들어맞아 두어 합에


곤선승을 날려 황천화를 또 잡아 공을 올리니 등구공이 대희하여 술을 주어 공을


하례하니 토행손이 술이 취하여 미친 말로 제 도술을 자랑하기를, "원수께서 일찍


저를 썼던들 무왕과 자아를 잡아 서기를 벌써 평정하였으리이다."하거늘 구공이


역시 취중에 실언하여 말하기를, "토장군의 말 같을진대 내 딸 선옥으로 그대


배필을 삼으리라."하니 토행손이 대희하여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이튿날


싸우기를 청하거늘 구공이 허락하니라.


 


  차설 황천화가 또 사로잡힘을 보하매 자아가 크게 근심하거늘 양진이 나아와


고하기를, "제가 한번 나아가 토행손을 사로잡아 오리이다."하고 차일 진전에


나가 토행손을 불러, "바삐 나와 자웅을 결하자."하니 토행손이 나와 맞아


사오합에 곤선승을 던져 양진을 결박하여 원문에 이르러 보니 한 덩이 큰 돌이라.


토행손이 어이없어할 즈음에 양진이 크게 소리 지르기를, "토행손아, 네 이만


술로 나를 속이려 하는가?"하고 두어 합을 싸우다가 양진이 효천견을 놓아


토행손을 물어내려 땅에 떨어지며 간 곳이 없으니 양진이 돌아와 자아에게


고하기를, "토행손이 땅으로 달아나는 술법을 겸하였으니 서기에 큰 근심이


되리니 일찍이 방비하소서."


  자아가 옳게 여겨 한 괘를 얻고 크게 놀라 말하기를, "오늘밤에 토행손이 영을


겁칙하리라."하고 급히 좌우를 명하여 무왕을 청하여 밀실에 모시고 여러 장수로


칼과 창을 가지고 무왕을 호위하고 양진을 명하여 이리이리하라 하고 밤을


지내니라.


 


  차설 토행손이 비수를 끼고 그 날 밤 삼경에 땅 속으로 행하여 서기의 상부에


이르니 등촉이 휘황한 가운데 여러 장수들이 각각 병기를 쥐고 좌우에 늘어섰으매


토행손이 능히 손을 쓰지 못하여 생각하되, '먼저 궁 속에 가 무왕을 죽이고 나서


자아를 취함이 늦지 않다.'하고 궁중에 들어가 무왕의 용상 아래로 나아가니


무왕은 없고 한 아름다운 궁녀가 잠을 깨지 아니하거늘 자세히 살펴보니 뺨은


도화 같고 입술은 앵두 같아서 진실로 경국지색(傾國之色)이매 토행손이 보던 바


처음이라. 정욕이 불같이 일어나 불문곡직하고 친압(親狎)하고자 하거늘 그


궁녀가 일어나며 한 손으로 토행손의 멱살을 잡고 한 손으로 뺨을 날아가게


때리니 토행손이 정신이 아득한 중에 살펴보니 이 곧 양진이라. 제 아무리


용맹한들 어이하리오? 양진의 한소리에 군사가 내달아 토행손을 결박하여 상부에


이르니 자아가 호령하여 내어 베라 하니, 군사가 토행손을 잡아 원문에 이르러


시행하려 할 즈음에 간 곳이 없으니 일군이 다 놀라더라.


 


  차설 양진이 자아께 아뢰되, "제자가 어느 명산을 찾아 토행손의 근본을 알아


오리이다."


  자아가 말하기를, "토행손이 또 겁영할 염려가 있으니 수이 다녀오라."


  양진이 토둔법을 행하여 두루 다니다가 한 곳에 이르니 이 곳은 협용산


비룡동이라. 한 정결한 초옥이 있거늘 나아가 사립문을 두드리니 동자가 나와


청하거늘 양진이 초당에 올라보니 곧 구류손 사백이라. 나아가 절하니 구류손이


답례하고, "네 어이 왔느냐?"


  양진이 토행손과 싸우던 말을 낱낱이 하며, "오다 들으니 토행손이 사백의


문도라 하니 그놈의 도술과 곤선승의 출처를 알고자 왔나이다."


  구류손이 대로하여 말하기를, "이 놈이 내 호로병 단약과 내 곤선승을 도적하여


갔도다."하고 즉시 양진을 데리고 산에서 내려가 자아의 영중에 이르니 자아가


맞아 인사를 마치고 말하기를, "도형의 문도 토행손에게 여러 번 패하매 도형을


수고로이 청하였으니 바라건대 도형은 토행손을 잡아 주면 대행일까 하노라."


  구류손이 말하기를, "자아공은 너무 염려치 마소서."하고 서로 담소하더니


토행손이 진전에 와 낭아곤을 빗기 들고 곤선승을 두루며 의기양양하여 싸움을


돋우거늘 구류손이 진문에 나서 불러 말하기를, "저 축생아, 나를 자세히


보라."하니 토행손이 한번 바라보고는 문득 말에서 내려 땅에 엎드려 말도 못


하고, 우러러보지도 못하거늘 구류손이 말하기를, "네가 내 단약(丹藥)과


곤선승을 도적하여 하마터면 성주와 내 도형을 해할 뻔하였다."하고 한 손으로


토행손을 가리켜 곤선승을 취하여 토행손을 결박하여 승상부로 돌아와 자아에게


올려 말하기를, "내가 더디 왔던들 저 짐승 같은 놈의 해를 크게 볼 뻔하였도다.


도형아, 토행손의 생사는 내 알 바 아니니 도형이 처치하라."


  자아가 사례하고 군사를 호령하여 토행손을 원문에 내어 베라 하니 토행손이


구류손을 바라보고 애걸하기를, "사부시여, 부귀는 사람마다 원하는 바요 빈천은


사람마다 싫어하는 바라. 제자가 일시 미혹하여 사부의 단약과 곤선승을 도적하여


부귀를 도모하려 하여 삼산의 등구공을 섬기더니, 등구공이 공을 이루면 딸


등선옥으로 배필을 삼겠다 하기로 부귀를 누릴까 한 일이오니 바라건대 사부는


자비를 드리소서."


  구류손이 이윽히 생각하다 자아를 향하여 말하기를, "자아공아, 내 토행손을


가르쳐 서기를 섬기게 하고 저 축생(畜生)으로 하여금 등선옥과 혼인하면


등구공이 또한 서기로 올 것이니 그 일이 아름답지 아니랴."


  자아가 말하기를, "내 토행손에게 우리 군신(君臣)이 참화를 당할 것을


천우신조(天佑神助)하여 무사하였으나 내 토행손을 베어 한을 씻으려 하였더니


도형의 말이 이러한즉 등구공의 부녀(父女)가 서기로 오면 서기의 큰 복이니


도형의 신기묘산(神技妙算)을 시험하라."


  구류손이 토행손의 곤선승 맨 것을 끄르고 말하기를, "네 사숙 승상께 인사를


드려라."


  토행손이 자아 앞에 나아와 절하여 말하기를, "제자가 사숙을 거슬려 범한 죄는


마땅히 죽임이 직하거늘 이렇듯 용서하시니 몸이 맞도록 견마(犬馬)의 힘을


다하오리이다."


  자아가 크게 기뻐하여 잔치를 배설하여 구류손과 여러 장수와 함께 즐기고


파적할 모책을 의논할새 토행손이 아뢰기를, "제가 이미 서기를 도우려


달려왔으니 한번 나아가 공을 세워 이왕의 죄를 속하여지이다."


  자아가 말하기를, "네 진심으로 하면 내 당당히 너로 하여금 등선옥과 혼인하게


하리라."하니 토행손이 대희하여 말하기를, "만일 승상의 말씀과 같을진대


수화(水火)라도 피치 않겠사오니 원컨대 계교를 가르치소서."


  자아가 말하기를, "네가 금야에서 도망하여 왔노라 하면 저희가 다 마음놓고


있을 것이니, 내가 그 날 밤에 인마를 데리고 진영을 위협할 것이니 네가 그 때를


틈타 내응하겠느냐?"


  토행손이 기뻐 뛰며 말하기를, "저의 사부께서 위에 계시니 제가 다시 두


마음을 두리이까?"하거늘 구류손이 또한 권하여 보내니라.


 


  차설 토행손이 여망이와 등구공을 보니 구공이 말하기를, "토장군이 서기로


돌아가 우리를 설득하러 왔느냐?"


  토행손이 크게 놀라 말하기를, "원수께서 어찌 저를 이다지 몰라보시나이까?


저는 원수를 부모같이 아옵거늘 의혹하심을 입사오니 차라리 산간에 가 세월을


보냄만 같지 못하오니 원컨대 원수는 보중하소서."하고 소매를 떨치고 표연히


가거늘 등구공이 급히 불러, "이 늙은이의 농담을 과히 꺼려하지 말라."하고 술을


주어 위로하더라.


 


  차설 그 날 밤 삼경에 자아가 많은 인마를 거느려 탕영을 돌입하니 토행손이


나와 진문을 열고 맞거늘 큰 대포 소리에 남궁괄, 무길, 신갑, 신면 등이


사면으로 물밀듯 나올새 고함 소리가 천지에 진동하더라. 금탁과 목탁이 후영에


들어가 감옥을 깨치고, 나탁과 황천화를 구하여 내니 나탁과 황천화가 합세하여


전후로 깨치니 사졸(士卒)이 엎어지고 자빠져서 주검이 뫼 같고, 피가 흘러


시내가 되었더라. 등구공이 동쪽을 바라 달아날새 다만 등수와 태란 등만 따르고,


소저 선옥은 간 곳을 모를러라. 토행손의 일편 정신이 등선옥에게 있는지라 즉시


내영에 들어가 선옥을 찾으니, 선옥이 불우지변을 만나 급히 말을 달려 나오다가


토행손을 만나니 토행손이 곤선승으로 선옥을 매어 서기의 성으로 오니라. 자아가


중장(衆將)으로 더불어 등구공을 엄살하고 군을 거두어 성으로 돌아오다.


등구공이 아들 등수와 태란과 조병 등으로 기산 아래에 이르러 패잔군을 점고하니


겨우 50여 명이요, 소저 선옥은 간 곳을 몰라 상감(傷感)하여 하더라.


 


  차설 자아가 구류손과 더불어 승전고를 울리고 은안전에 앉아 여러 장수의 공을


표하고 자아는 구류손을 대하여 말하기를, "오늘이 길일이라. 토행손으로


등소저를 맞아 혼인하게 함이 어떠하뇨?"


  구류손이 말하기를, "나도 이 뜻이 있으니 마땅히 때를 잃지 마소서."


  자아가 명하여 토행손과 등선옥을 혼인할새 시비 10여 명이 등소저를 호위하여


화촉동방으로 나아가니, 등소저가 비록 군복을 입었으나 화용월태에 부끄럽고


분한 눈물을 머금었으니 이화 가지에 비 뿌림과 같더라. 토행손이 바라보고


정신이 표탕하여 만단으로 위로하니 등소저가 토행손의 거동을 보고 분을 참지


못하여 크게 꾸짖기를, "무지한 필부(匹夫)야, 네 어떠한 무리관대 주장을


배반하여 영화를 구하고 이렇듯 무례하뇨?"하고 사기가 등등하거늘 토행손이


마음에 늠름하나 겉으로 웃으며 말하기를, "소저가 비록 천금지구(千金之軀)나


나도 무명지배(無名之輩)는 아니요, 협용산 문도라. 그러하나 존옹과 소저가


낙상하였을 때 내 단약(丹藥)이 아니면 어찌 회생하였으며, 또 내가 나탁과


황천화를 사로잡은 후 존옹이 취중에 소저로 나의 배필을 정하자 하신 일은


소저도 이미 아는 바요, 내가 사부의 명으로 서기로 온 바니 주인을 배반함이


아니오. 또 소저가 이미 내게 사로잡혔으매 등소저와 토행손은 천정한 배필로


삼군이 다 알지니, 소저가 비록 얼음같이 맑고 옥같이 조촐하더라도 뉘 알리오?


바라건대 소저는 재삼 생각하라."


  선옥이 머리를 숙이고 말이 없거늘 토행손이 소저가 마음을 돌린가 하여 가까이


나아가 옷을 잡으니 소저가 부끄러움을 견디지 못하여 손을 밀쳐 막으며


말하기를, "일이 비록 그러하나 어찌 급히 핍박하나뇨? 명일 부친께 청한 후


혼례를 하여도 늦지 않으리이다."


  토행손이 말하기를, "금일이 좋은 날이니 어찌 아름다운 기회를 그르게


하리오?"하고 정욕을 금치 못하여 점점 가까이 와 의대를 끄르니 소저가 죽기로


막다가 띠가 끊어지며 옷이 풀리니, 소저가 비록 전장에 출입하는 장수나 아마도


여자라 어찌 장부를 대적하리오? 하릴없어 옷 벗기는 대로 두고 눈을 감고 말이


없으니 아리따운 태도가 낯에 가득하더라. 토행손이 소저의 옷을 벗겨 안고


금침에 나아가니 원앙이 녹수에 놀고 비취 연리지(連理枝)에 깃들임 같아 인간


지락이 이에서 더함이 없더라.


 


  화설 토행손이 등소저와 성친하여 일야를 지낸 후 부처 이인이 일어나 세수를


마치매 토행손이 말하기를, "우리 두 사람이 강승상이 보살피어 혼인한 은혜를


사례 아니치 못하리라."


  소저가 말하기를, "이 일은 진실로 마땅히 사례하려니와 나의 부친이 어제


패하여 어느 땅에 계신지 모르니 어찌 인자의 도리리오? 원컨대 장군은 이 뜻으로


승상께 아뢰어 두 가지의 온전한 구처를 하게 하소서."


  토행손이 말하기를, "현처(賢妻)의 말이 옳다."하고 두 사람이 은안전에 올라가


사례하고 토행손이 등소저의 소회를 아뢰니 자아가 말하기를, "등선옥아, 네 이제


주나라 신하의 아내가 되었으나 네 아비가 끝내 항거하여 항복하지 아니하면 내가


군사를 일으켜 멸하고자 하나니 어찌 처리하면 좋을꼬?"


  토행손이 아뢰기를, "선옥이 이 일로 제자와 의논하옵기를 사숙이 계책을


만들어 저의 부친으로 하여금 서기로 돌아오게 하면 좋을까 하나이다."


  자아가 말하기를, "이 일은 어렵지 아니하나 선옥의 참 마음이냐?"


  선옥이 올라가 꿇어 아뢰되, "천첩이 이미 주나라로 돌아왔으니 어찌 두 뜻이


있으리이꼬? 몸소 나아가 부친으로 하여금 돌아와 항복하게 하리이다."하니


자아가 대희하며 군교(軍校)를 발하여 따라가게 하니라.


 


  차설 등구공이 패잔병을 거두어 주찰하고 하루 밤을 지낸 후 군사가 보고하되,


"소저가 한 부대의 인마(人馬)를 거느리고 주나라 깃발을 가지고 원문에


이르렀나이다."


  구공이 급히 들어오라 하니 선옥이 말을 내려 중군에 들어와 꿇어 엎더지거늘


구공이 급히 일으키고 묻기를, "내 아이야, 어찌하여 저리 하느냐?"


  선옥이 눈물을 흘려 말하기를, "저는 감히 말을 못 하나이다."


  구공이 말하기를, "네가 무슨 원통하고 억울함이 있느냐? 가까이 와 말하여라."


  선옥이 말하기를, "저는 깊은 규방의 여자인데 부친의 실언(失言)한 결과로


강승상의 계교에 빠져 사로잡혔다가 억지로 혼인을 하였으니 뉘우쳐도 미칠 수가


없나이다."하고 눈물이 비오듯 하거늘 구공이 이 말을 들으매 혼비백산하여


한참을 말이 없거늘 선옥이 또 나아와 여쭙기를, "제가 이미 몸을 버려 토행손의


아낙이 되었으나 이제 주왕이 무도하여 천하가 어지러우매 셋으로 나누어진 천하


가운데 둘이 주(周)로 돌아갔으니 그 천하의 인심을 점치지 아니 하여도 알


것이오, 또 노웅, 장계방, 문태사 등이 다 멸망하였으니 순역지도(順逆之道)가


밝히 드러난지라. 이제 부친이 군사를 다 죽이고 나라로 돌아가시면 죽임을 면치


못할 것이니이다. 부친께서 화를 면하시고자 주나라로 돌아가시면 어두운 데를


버리고 밝은 데로 향하시는 것이니, 바라건대 부친께서는 깊이 생각하소서."


  구공이 딸의 한 마디 말을 들으니 크게 유리한지라. 한참을 말을 못 하다가,


"아이야, 네 말이 가장 옳으나 다만 내 강자아에게 무릎을 꿇음이 부끄럽지


않으랴."


  선옥이 말하기를, "이 일은 어렵지 아니니이다. 강승상이 허심하사하여 교궁이


없는지라 부친이 진정 항복하실진대 제가 먼저 가 말하여 영접하게 하리니 부친은


뒤를 이어 오소서."하고 승상부에 돌아와 자아에게 전후 사상을 아뢴대 자아가


대희하여 위의를 차려 성밖 10리쯤에 나와 영접할새 등원수의 군사가 오거늘


자아가 마주 나아가 영접하니 등구공이 마상에서 등을 굽혀 말하기를, "말장이


재주가 섞이고 지혜가 옅어 이제 귀향하니 바라건대 용서하소서."


  자아가 또한 몸을 굽혀 앞에 나아가 구공의 손을 이끌고 말하기를, "장군이


이미 사리를 알고 돌아오니 무엇을 혐의하며, 또 영애(令愛)가 나의 문하


사질에게로 돌아왔으니 내가 장군에게 치사하노라."


  등구공이 감격함을 이기지 못하더라. 두 사람이 상부에 이르러 은안전에 잔치를


배설하여 즐기니라.


 


  차설 사수관 한영이 글을 올렸으되 삼산관 등구공이 서기에 항복하였다


하였거늘 주왕이 대로하여 말하기를, "등구공이 짐의 후은을 입고 반적에게


항복하니 뉘 나아가 반적을 잡을꼬?"하니 간대부 비렴이 아뢰기를, "출전 대장이


요행히 이기면 첩서를 올리고, 이기지 못하면 서기로 투항하니, 이제 왕가 친척


중 한 사람을 보내어 서기를 치면 반적을 가히 사로 잡으리이다."하니 주왕이


말하기를, "경이 한 사람을 보하라."


  비렴이 말하기를, "기주후 소획이 가할까 하나이다."하니 주왕이 말하기를,


"경의 말이 가장 옳다."하고 즉시 군정관을 명하여 백모황월(白矛黃鉞)을 발하여


기주의 소획에게 보내니라. 사명이 기주에 이르니 소획이 조서를 읽어 맞고


심중에 대희하여 사신을 관대하여 보내고 아들 전충과 부인 양씨더러 말하기를,


"우리가 불행히 달기를 낳아 주왕에게 올렸더니 이 무례한 것이 부모의 훈계를


듣지 아니하고 주왕을 미혹하여 만민을 도탄하매 천하 사람으로 하여금 나를


한하니 내 못난 임금을 버리고 명주(明主)를 섬겨 무도한 것을 쳐 멸하여 천하


후세에 웃음과 기롱을 면하고자 하나니 부인의 뜻은 어떠하뇨?"


  부인이 크게 기뻐하여 말하기를, "이 일은 우리 모자의 마음이로소이다."하니


소획이 성을 들어 서기에 항복하니라.


 


  화설 주왕이 적성루에 잔치하여 달기와 즐기더니 사수관 한영이 글을 올려 기주


소획이 서기에 항복하다 하였거늘 주왕이 대로하여 책상을 치며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뉘 도적을 사로잡을꼬?"하니 달기가 곁에 있다가 울며 아뢰되, "첩의


아비가 적국에 귀항하였으니 죄가 당당히 삼족(三族)을 멸할지라. 첩이 어찌


궁위에 있어 폐하를 모시리이까? 속히 첩을 죽여 아비의 불충을 밝히소서."하고


목이 메어 눈물이 떨어지거늘 주왕이 노여움을 그치고 달기의 등을 어루만져


말하기를, "어처야, 깊은 궁궐에 있어 바깥일을 어찌 알리오? 부질없이 간장을


썩여 화용을 상해오지 말라."하고 삼산관 총병 홍금에게 조서하고 황모 백월을


주어 서기에 가 문죄하고, 소획을 사로잡아 오라 하니 홍금이 조서를 보고 즉시


군사를 발하여 서기 성하에 이르러 칠주하고 강상을 청하여 말하자 하거늘,


자아가 윤건 도복을 입고 손에 행황기를 들고 사불상을 타고 앉았으니 홍금이


마음에 늠름하나 크게 불러 말하기를, "오는 자가 강상이냐?"


  자아가 답하기를, "그렇거니와 장군의 이름은 무엇인가?"


  홍금이 답하기를, "나는 봉천 정토대원융 홍금이라. 너희가 신하의 도리를


지키지 아니하고 반란자와 어울리기로 이제 측기를 받들어 너희 반란자를


사로잡아 국법을 밝혀 백성을 도탄에 빠지는 일이 없게 하리라."


  자아가 웃으며 말하기를, "홍금아, 너는 대장이 되어 마땅히 기틀을 알지라.


이제 천하 제후가 다 맹진에 모여 독부(獨夫) 주를 쳐 생민이 도탄에 드는 것을


구하려 하니 너희는 하늘을 거슬러 무도(無道)를 돕지 말고 명주(明主)를 섬겨


제후의 자리를 잃지 말라."


  홍금이 크게 꾸짖어 말하기를, "늙은 필부가 어찌 감히 어지러운 말을


하느냐?"하고 말을 달려 나오거늘 옆에 희숙명이 대로하여 급히 창을 끌고 나와


홍금을 상대하니 홍금이 본디 이단의 방술사라. 서로 맞아 수십 합을 싸우다가


검은 깃발 아래로 들어가 간 곳이 없더니 뒤로 나와 숙명을 베어 말 아래로


내리치고 또 진전에 나서 크게 부르짖기를, "뉘 나를 대적할꼬?"하거늘 등선옥이


말을 달려 나오며 크게 부르짖기를, "필부야, 내 칼을 받으라."


  홍금이 바라보니 한 여장(女將)이 금투구에 금갑옷을 입고 나는 듯이 나오니


홍금이 대답지 아니하고 칼을 춤추어 선옥을 상대하다가 검은 깃발을 둘러 전과


같이 술법을 쓰려 할 즈음에 선옥이 오광석으로 홍금의 면상을 때려 거의 낙마할


뻔하다가 영으로 들어갔다가 이후에 패하여 서기에 항복하니라.


 


  각설 이전에 금탁 3형제가 승상께 아뢰기를, "저희 부친 이정이 진당관으로


군마를 거느려 밖에 와 뵈옵기를 청하나이다."


  자아가 크게 기뻐하여 급히 나아가 영접하여 서로 사례함을 마지아니하고


무왕께 인사를 드리고 잔치하여 즐기니라. 하루는 한 도사가 와 승상께 절하여


말하기를, "제자는 금정산 옥동 도행천존의 문도 위획이니, 사부 명으로 승상의


아랫 사람이 되려 오다가 적장 여악의 머리를 베어왔나이다."하거늘 자아가


대희하여 군정사를 시키니라.


 


  화설 승상이 무왕께 아뢰되, "이제 주왕이 무도하여 천하가 다 반하매 동백후


강문환과 남백후 악순과 북백후 숭응난이 각각 소제후를 거느려 다 맹진에 모여


독부 주를 쳐 만민도탄을 면케 하나니 원컨대 대왕은 응천순인(應天順人)하사


천하 제후의 뜻을 좇으사 인의지병을 거느려 맹진으로 가사이다."


  무왕이 말하기를, "주왕이 비록 무도하여 천하가 다 반하나, 전날 선왕이


신하로써 임금을 치지 말라 하신 말씀은 상보도 들은 바라. 이제 상보 말을


좇으면 선왕의 유언을 행치 아니하니 불효요 또 주왕을 정벌하면 불충이니 그로


하여금 천하 후세에 불충불효를 면치 못하리니, 상보와 더불어 신하의 도리를


지켜 주왕이 개과천선하기를 기다림이 또한 좋지 아니하뇨?"


  자아가 말하기를, "노신(老臣)이 어찌 선왕을 저버리이까마는 천하에 기약하지


아니하고 모인 제후 800명이 맹세하되 만일 제후가 하나라도 오지 아니하면


군사를 옮겨 먼저 쳐 천명을 거역함을 밝히고, 무도를 치자하였으니 노신이 어찌


국사를 그르게 하리이까? 대왕은 살피소서."


  또 산의생이 아뢰기를, "승상의 말이 위로 천명을 받들고 아래로 인심을 순케


함이니 가히 임금께 충성하고 부모께 효도하는 도로소이다."하니 무왕이 윤허하사


산의생으로 하여금 남궁괄과 무길에게 명하여 기산에 장대를 쌓고, 승상을


소탕천보대원수를 배하시고 황모백월을 더하사 정벌을 오로지하게 하시고


택일하여 군사를 출동할새 나탁, 남궁괄, 무길로 전대를 하고, 이정, 뇌진자,


양진, 금탁, 목탁, 신면으로 좌우익을 삼고, 위획, 신갑으로 군정사를 삼고,


원수는 무왕을 모시고 중앙이 되고, 여러 장수는 앞뒤로 호위하고 군사 6만을


거느려 호호탕탕히 나아가사 수관에 이르러 총병 한영을 베고, 민지현에 이르러


총명 장수를 베고, 황하수를 건너 맹진에 이르니 기약 없이 모인 자가 800명이라.


  제후의 군사를 합병하니 160만 명이요, 장수는 3,000명이라. 동백후 강문환과


북백후 숭응난과 남백후 악순이 무왕을 맞아 하례하고 엎드려 고하기를, "이제


대왕이 개미에 임하사 여러 제후로 하여금 모습을 뵈오니 위엄과 덕이 백성을


수화(水化) 가운데서 건지시겠으니 천하가 다행하고 만민이 다행하도소이다."


  무왕이 겸양하여 말하기를, "소자 발이 선왕의 위를 이었으나 덕이 적고


우매하여 여러 제후의 가르치심을 어찌 바라리오?"하시니라.


 


  차설 원수가 여러 제후와 더불어 행군하여 물밀듯 나아가니 깃발과 창칼은 해를


가리고 징소리와 함성소리는 천지에 진동하더라. 지나는 곳에 군사가 추호도


백성을 범치 아니하니 백성이 음식을 내어 맞이하더라. 대진(大陣)이 서울에


이르니 이때 주는 달기와 더불어 잔치하여 즐기다가 800 제후의 군사가 성 아래에


이르렀음을 듣고 크게 놀라고 노하여 무왕과 강자아를 꾸짖는 조서를 중대부


은좌패를 시켜 보내었더니 동백후 강문환에게 벤 바 되매 은좌패의 아들


은경주왕이 통곡하여 아뢰기를, "양진이 상대하여도 사신을 죽이는 일은 없거늘


이제 적진에서 신의 아비를 죽이니 신이 나가 싸워 국은(國恩)과 신의 아비


원수를 갚으리이다."


  주왕이 대희하여 말하기를, "경은 진실로 충효대장이로다."하고 은경주


3,000명을 거느려 주왕의 진영에 나아가 싸움을 돋우니 강문환이 그 말을


듣자마자 말을 몰고 나가며 말하기를, "네 아비가 때를 모르고 망령된 말을


하거늘 내 죽였거니와 너마저 죽으려 하느냐?"


  은경주가 크게 소리 지르기를, "내 아비가 조서를 받들어 갔거늘 네가 사신을


죽이니 이는 오랑캐 무리라. 너를 만 토막을 내어 원수를 갚으리라."하고 칼춤을


추며 내닫거늘 강문환이 맞아 싸워 수십 합에 문환이 한소리 크게 지르며


은경주의 머리를 말 아래 내려지니 패한 병사가 돌아가 주왕에게 아뢴대 주는


간담이 서늘하여 말을 못 하더니 군사가 또 알리기를, "주나라 군사가 성을


철통같이 싸고 급히 치느냐?"하거늘 노인걸이 아뢰기를, "신이 죽기로써 성을


지키리이다."하니 주왕이 허락하거늘 노인걸이 군사를 재촉하여 성을 굳게 지키매


강문환이 능히 빼앗지 못하거늘 자아가 말하기를, "노인걸은 지혜가 넉넉하고


충렬이 있는 장수요 또 성이 높고 해자(垓字)가 깊으니 인력(人力)으로 할 바


아니라."하거늘 여러 장수들이 말하기를, "우리가 각각 도술을 행하여 성에


들어가 내외 접응하면 무엇이 어려우리오?"하니 자아가 말하기를, "그렇지 않다.


여러 장수 등이 성에 들어가면 자연 백성을 살해하게 되리니 백성이 주에게


괴로움을 겪다가 또 살육을 만나면 주를 없이 하고 걸을 만남이라. 이제 글을


지어 이해를 타 성중 백성에게 고시하면 백성 등이 자연 문을 열리라."하고


군정사를 명하여 글 100장을 써 화살에 매어 성중에 쏘니 그 글에 하였으되,


“서주 천보 대원수 강상은 성중 만민에게 고시하나니, 이제 주왕이 황음무도하여


충량을 살해하고 만민을 도탄한 죄를 황천에 얻었는지라. 이러므로 우리 서주


무왕이 하늘의 명을 받아 독부(獨夫) 주를 쳐 멸하여 도탄에 든 백성을 건지려


하니 성중 인민은 하늘의 뜻을 순순히 따라 성문을 열어 왕의 군사를


맞으라.”하였더라.


  성중 백성들이 글을 보고 저마다 뛰놀며 말하기를, "못난 임금이 황음무도하여


만민을 잔학하더니 이제는 어두운 데를 면하고 밝은 데를 보리로다."하고 여러


사람이 일시에 나아가 수문장을 죽이고 성문을 크게 열고 주나라 군사를 맞으니


여러 신하들이 급히 아뢰기를, "주나라 군사가 남문에 왔다."하거늘 주왕이


노하여 갑주를 갖추고 노인걸로 선봉을 삼고 뇌곤 뇌붕으로 좌우익을 삼고 주왕이


친히 소요마를 타고 문기(門旗)의 아래 나와 보니, 자아가 홍안 백발에 갑주를


갖추고 사불상을 타고 무왕의 앞에 있고 800제후는 각각 병기를 들고 좌우에 벌여


섰으니 그 위엄이 비할 데 없더라. 주왕이 말을 몰아 문기의 아래 나서니 머리에


황금봉 투구를 쓰고 몸에 쇄자갑에 곤룡포를 껴입고 손에 학선도를 가졌으니 그


웅위한 용맹이 비할 데 없더라. 주왕이 자아를 보고 크게 꾸짖기를, "네 전일


짐의 신하가 되었거늘 어찌 짐을 배반하고 서주를 도와 역신이 되었나뇨?"


  자아가 말하기를, "폐하께서 황음무도하여 달기의 말을 듣고 녹대를 지어


만민을 도탄에 빠뜨리고 만분, 포락지형을 내어 충량을 살해하고, 직간하는


황후의 눈을 빼고 손을 포락하여 돌아가시게 하고, 조신의 아내를 음란하고자


하다가 그릇 되이 죽게 하고, 황귀인을 누각 밖으로 밀쳐 원통하게 죽이고, 바른


말하는 비간의 배를 가르고, 날마다 살생을 낙으로 삼으니, 천하가 다 반란하여


800제후가 기약을 하지도 않았는데 모여 백성을 위로하고 죄를 벌함이니 누구를


한하리오?"하니 여러 장수사 일시에 주왕을 에워싸고 치되 조금도 두려움이 없이


대적하더니 동백후 강문환과 남백후 악순이 앞에 나아가 크게 외쳐 말하기를,


"아비를 죽인 원수와는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다."하고 달려들거늘 주왕이 평생


힘을 다하여 크게 한소리를 지르며 칼을 들어 악순을 베어 내려치니 남궁괄,


무길, 이정, 양진, 위획, 뇌진자, 금탁, 목탁, 나탁, 신갑, 신면 등 여러


장수들이 소리치며 말하기를, "오늘날 못난 임금을 잡지 못하면 어느 때를


기다리리오?"하고 달아들어 양진은 뇌곤을 베고, 나탁은 노인걸을 죽이고, 위획은


뇌붕을 베고, 강문환은 쇠채찍을 들어 주왕의 등을 때리니 아픔을 견디지 못하여


말을 돌려 남문으로 들어가니 여러 장수 등이 남문을 깨치고 들어가려 하거늘


자아가 징을 쳐 군사를 거두니라.


 


  차설 주왕이 쇠채찍을 맞고 돌아와 탄식하기를, "내 전일 충간(忠諫)을 듣지


않아 이 지경을 당하니 참으로 아깝다. 성탕의 600년 기업이 내 몸에서


마치리로다."하고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충성스러운 신하가 이미 다 죽었으니


어찌 도적을 막으며 짐이 큰 상처를 입었으니 어찌 다시 자웅을 결하리오?"하고


내전에 들어가니 달기와 호흐미와 왕귀인이 맞이하거늘 주왕이 3미인을 보고


심혼(心魂)이 참담하여 눈물을 흘리며 달기더러 말하기를, "짐이 강상을


업신여기다가 오늘 이런 난을 만나 강문환에게 도끼를 맞고 노인걸 등이 다


전쟁에서 죽었으니 누구와 더불어 종사를 의논하리오? 조종 기업이 짐에게 이르러


망하게 되니 짐이 무슨 면목으로 선왕을 지하에 가 뵈오리오? 만일 희발의 군사가


궁중에 들어오면 차마 욕을 견디지 못하리니 너희를 영결하고 진을 헤치고


달아나려 하노라."


  달기가 울며 주왕의 소매를 잡고 말하기를, "폐하께서 만일 달아나려 하시면 첩


등도 따라가려 하나이다."


  주왕이 차마 떠나지 못하고 술을 내어 잔을 잡고 서로 권하며 이별하고자 하니


달기가 말하기를, "첩 등이 일찍이 배운 도술이 있으니 한번 적진에 나아가


도적을 파하여 폐하의 은혜를 갚으리이다."


  주왕이 말하기를, "어처가 만일 도적을 파하면 이는 천고에 없는 공이라."하니


달기, 호흐미, 왕귀인 등이 주의 영을 받아 따르기를 의논하더라.


  이 때 자아가 삼요(三妖)를 물리칠 일은 생각지 아니하고 여러 장수와 더불어


주왕을 항복받을 일을 의논하다가 각각 침소로 들었더니, 삼경은 되어 광풍이


일며 삼요가 갑주를 입고 손에 창검을 쥐고 영중에 돌입하여 입으로 바람과


안개를 토하여 좌충우돌하니 잠든 군사들이 동서를 분변치 못하고 서로 자빠져


죽은 자 무수한지라.


  자아가 놀라 장대에 올라 바라보니 비린 바람과 누린 안개가 자옥하거늘 삼요의


요술인 줄 알고 여러 장수를 지위하여 치니, 이정, 위획, 뇌진자, 양진, 금탁,


목탁, 나탁 등이 일시에 내달아 바라보니 3 여장이 병기를 들고 시살하거늘


나탁은 풍화륜에 올라 화첨창을 두루며, 뇌진자는 두 날개를 떨쳐 공중으로 지쳐


내려오며, 금탁, 목탁, 양진, 위획 등은 동서남북으로 몰아들어와 삼요를


에워싸고, 족치니 삼요가 천년 묵은 요괴라 능히 싼 데를 헤치고 남문을 넘어


들어가니 주왕이 급히 묻기를, "부인이 주영을 겁칙하매 승부가 어떠하뇨?"


  달기가 머리를 흔들어 말하기를, "처음에 영에 들어가 시살하매 거의


성공할러니 여러 장수가 사면으로 철통같이 싸고 치매 당치 못하여 겨우 목숨을


도망하여 왔나이다."


  주왕이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장차 어찌하리오? 다 내가 충간 듣지 아닌


죄라. 누를 한하리오?"하고 태모를 향하여 사배하고 소매를 떨쳐 적성루에 올라가


자결하고자 하거늘 삼요가 나아가 옷을 잡고 울며 말하기를, "폐하께서


돌아가시면 첩들이 어디 의지하리오? 아직 살아 뒷일을 보사이다."


  주왕이 삼요의 등을 어루만져 말하기를, "강상이 비록 궁중에 들어온들 내


경들을 두고 어찌 죽으리오? 함께 죽어 혼이라도 같이 다니자."하고 편전에


내려가 잔치를 배설하여 술 먹으며 말하기를, "이 잔치가 마지막이라. 어느 때


다시 잔치하리오?"하고 흐르는 눈물이 비오듯하거늘 삼요가 술을 큰 잔에 부어


서로 권하니 주왕이 대취하여 자거늘 세 요괴가 서로 이르되, "강상이 우리


근본을 알았으니 잡히면 환을 만날지라. 도망함만 같지 못하다."하고 각기 본


형상을 내어 현원묘를 향하여 달아나니라.


 


  차설 자아가 세 요괴에게 패한 군사를 거두어 영채를 세우고 한 점괘를 얻고


여러 장수더러 말하기를, "만일 늦어지면 이 요괴들을 놓칠 뻔하였다."하고


양진과 뇌진자와 위획을 불러 말하기를, "너희는 헌원묘로 가는 길 공중에


숨었다가 양진은 구두치를 잡고, 뇌진자는 구미호를 잡고, 위획은 옥석 비파


정령을 잡아오라."


  삼장(三將)이 청령하고 토둔법을 행하여 구름 속에 숨어 살펴보니, 이윽고 비린


바람이 일어나며 삼요가 각각 보검을 쥐고 구름 사이로 오거늘 삼장이 내달아


크게 소리 지르기를, "이 업축(業畜)아, 닫지 말라. 오기를 기다린 지


오래도다."하고 달려드니 구미호가 큰 소리로 꾸짖기를, "우리 너희와 원수진


일이 없거늘 어찌 가는 길을 막는가?"하고 칼을 두르며 달아들거늘 삼장이 또한


달아드니 요괴가 어찌 삼장을 대적하리오? 몸을 날려 달아나거늘 양진이 효천견을


놓으니, 효천견이 구두치의 콧등을 물어 떼니, 살이 떨어져 피가 흐르되 아픔을


견디고 닫거늘, 삼장이 급히 따르더니 멀리 바라보니 향운이 표표하고 서기가


은은한 가운데 한 낭랑이 푸른 난새를 타고 오니 이는 여와씨 낭랑이라. 낭랑이


삼요가 가는 길을 막고 크게 꾸짖기를, "업축아, 어디로 가느냐?"


  삼요가 여와씨를 보고 칼을 던지고 땅에 엎디어 아뢰기를, "낭랑이 강림하시되


소축(小畜) 등이 멀리 맞지 못하였사오니 죄를 용서하소서."


  여와씨가 벽운 동자에게 명하여 부요삭으로 삼요를 매어 주영으로 보내라 하니


삼요가 사람의 모습을 하여 울며 말하기를, "전일 낭랑이 소축 등으로 은왕을


미혹케 함이로소이다."


  낭랑이 말하기를, "내 생령은 상하지 말라 하였거늘 너희가 살생한 죄를 어찌


면하리오?"하고 동자를 재촉하여 삼요를 매어 양진 등에게 주어 주영으로 보내니,


삼장이 삼요를 잡아 영에 돌아와 청령하거늘, 자아가 명하여 원문 밖에 내어


벨새, 희비 왕귀인은 베었으나, 달기의 목에는 칼이 들지 아니하여 못 벤다


하거늘, 자아가 부적을 달기 등에 붙이고 베어 원문에 삼요의 머리를 높이 달아


만성 군민이 보게 하니라.


 


  차설 주왕이 술을 깨어 본즉 달기 등은 간 곳없고 홀로 앉았더니 궁녀 등이


황급히 들어오거늘 놀라 연고를 물으니 궁녀 등이 울며 고하기를, "삼위 낭랑이


간곳없고 또 궁녀도 태반이나 없나이다."


  또 한 궁녀 고하되, "삼위 낭랑의 머리가 주나라 영에 달렸나이다."하거늘


주왕이 망연자실하다가 방성대곡하고 환관 주승더러 말하기를, "짐이 전일 충간을


듣지 아니하고 생령을 많이 살해하여 불인무도(不仁無道)를 행하더니 이제


강상에게 잡히게 되니 짐이 만승천자로 어찌 적수에 죽으리오? 네 섶을 쌓고 불을


놓으라. 내가 섶 위에 앉아 불에 타 죽으려 하노라."


  주승이 울며 아뢰기를, "이제 불행하오나 차마 어찌 불을 놓으리이까?"


  주왕이 탄식하며 말하기를, "이는 천수라 도망치 못하나니 전일 서백의 점복에


짐이 불에 타 죽으리라 하더니 오늘을 이름이라. 누를 한하리오? 빨리


거행하라."하니 주승이 마지못하여 섶을 쌓고 불을 놓을새, 주왕이 비단옷을


입고, 보배옥을 쥐고, 섶 위에 단정히 앉아 눈물을 흘리거늘 주승이 울며


고하기를, "신이 폐하와 한가지로 불에 죽어 지하에 뫼셔지이다."하고 불에


뛰어드니 주왕이 길이 탄식하기를, "주승은 진실로 충신이로다."하고 죽기를


기다리더라.


  이 때 주영의 군사가 물밀듯 남문으로 들어와 적성루로 향할새 강문환이 주왕을


가리켜 말하기를, "네가 스스로 불에 죽으니 천앙(天殃)이 아니랴?"하고 살을


빼어 쏘니 기둥이 불에 반쯤 탔더니 살을 맞아 무너지니 주왕이 집에 치어 뼈가


부서져 죽고 화광(火光)이 더욱 충천하더라.


 


  차설 자아가 800제후를 거느리고 남문을 들어 무왕을 구간전에 전좌하시게 하고


단을 만들고 택일하여 무왕을 보위에 오르시게 하고 산호만세(山呼萬歲)하고


축문을 지어 천지후토께 제사를 지낼새 800 제후가 좌우에 벌려서고 주공이 축문


지어 읽으니라.


  “세차 모년월일에 서주 무왕 희발은 천지후토께 고하나니 은왕 주왕이 하늘을


공경치 아니하고 만민을 도탄에 빠뜨리매, 신 희발이 천의(天意)를 응하여 주의


죄를 밝히고, 신 희발이 하늘의 명을 따르고, 백성의 뜻을 좇아 외람되이 높은


자리에 나아가 인심을 진정하고자 하오니 바라건대 모든 신령은 돌아 보사 재앙을


내리지 마소서.”


  주공이 읽기를 다하매 상서로운 구름이 일어나니 성제 명왕의 창업하는


날일러라.


  왕이 천자의 자리에 나아가 남면에 앉으시어 천하에 크게 사면을 베풀고


800제후를 각각 본국으로 보내고 충신의 묘에 표를 세우고, 주왕의 시신을 거두어


왕의 예로 장사하고, 누대를 헐어 재물을 백성에게 흩어 주니라.


  주왕의 아들 무경으로 성지를 지켜 선조의 제사를 받들게 하고, 관숙과


채숙으로 은지를 봉하여 백성을 다스리게 하고, 택일하여 본국으로 돌아올새 성중


백성들이 남녀노소 없이 울며 성주와 이별함을 부모를 잃음 같이 하거늘 왕이


위로하기를, "짐의 어제로 대신하여 너희를 무휼하게 하였으니 너희들은


봉공수법(奉公守法)하면 자연 안락하리라."하고 자아와 여러 장수 군졸과 더불어


본국에 돌아와 진하를 받은 후에 출전 여러 장수를 차례로 봉작(封爵)할새 신선


장수 이정, 양진, 위획, 뇌진자, 금탁, 목탁, 나탁 등 7인이 아뢰기를, "신들은


산에 있어 약이나 캐고 도덕이나 강론하는 무리옵더니 사부의 명으로 폐하를 도와


어두운 임금을 쳐 버리고 도탄에 든 백성을 건짐이요, 인간 부귀를 바란 바


아니로소이다."했다.


  왕과 자아가 남교에 나가 전별할새 대연을 배설하여 즐기다가 서로 눈물을 뿌려


이별하니 칠원 선장이 배사하고 표연히 가니라.


 


  화설 마씨가 자아의 궁곤함을 업신여겨 자아를 배반하고 농부 장삼노에게


개가하였더니 마씨의 이웃 노파가 마씨더러 말하기를, "당자야, 당년에 강자아를


따라 서기로 갔던들 무궁한 복록을 누릴랏다."하고 자아가 서기의 무왕을 도와


주를 치고 무왕이 천자가 되매 자아가 출장입상(出將入相)하여 부귀 영풍이


천하에 으뜸이라 하니 마씨가 한번 들으매 정신이 아득하여 꿈인 듯 취한 듯


반일을 말 못 하다가 다시 생각하되, '혹 동성 동명이 있는가?'하고 있더니


장삼노가 성중으로부터 오거늘 마씨가 강승상의 일을 물으니 삼노가 웃으며


말하기를, "내 들은 지 오래되 낭자가 알면 번민할까 하여 말 아니하였더니 과연


그러하거니와, 이는 다 하늘이 정한 운수이니 마음에 두지 말라."


  재삼 위로하거늘 마씨가 들으니 더욱 기운이 막혀 종일 말을 아니 하다가 밤에


들보에 치마끈으로 목매어 죽으니라.


 


  화설 무왕이 특별히 태공을 제왕으로 봉하여 제나라 70여 성을 웅거하여 임치에


도읍하고 궁녀, 황금촉백, 진국보기, 황모백월을 주어 정벌을 오로지 하여 제후의


어른으로 삼으니 자아가 들어가 조회하고 나라로 갈새 무왕이 백관을 거느리고


남교에 나가 전송하니 자아가 머리 조아려 사은하고 말하기를, "신이 멀리 가매


조석으로 가까이 모시지를 못하옵고 한번 떠나매 어느 날 천안을 뵈오리이까?"


  마음에 섭섭함을 마지아니하거늘 무왕이 위로하기를, "상보가 나이 높고 왕실의


괴로움이 많은지라. 이제 나라에 나아가 안강(安康)한 복을 누려 조석으로 수고를


없게 하라."하시거늘 자아가 재삼 절하여 사례하고 말하기를, "폐하께서 신을


이렇게 생각해 주시니 신이 무엇으로 폐하의 알아주시는 은혜를 갚사오리이까?"


  군신이 서로 눈물을 뿌려 이별하니라.


 


  차설 태공이 제곡에 이르러 송이인의 옛 은혜를 생각하고 왕사에 다사하여 한번


수후(隨後)도 못 하였으니 의를 저버린 사람이라 하고 이에 사신을 보낼새 황금


천근과 금은 옥백을 봉하여 송이인에게로 보내니 사신이 제국을 떠나 조가에 가


송이인을 찾으니 이인 부부는 이미 죽고 그 아들이 있어 예물을 받고 회답하여


보내니라.


  태공이 나라를 다스리기를 법도 있게 하매 다섯 달이 넘지 아니하여 제나라가


크게 다스려 백성이 격양가를 부르고 천자가 자주 예관을 보내사 금은 옥백을


상사하시니 부귀영총이 천만고(千萬古)에 제일이 되더라.

출처 : 산그늘솔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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