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하이젠베르크,《부분과 전체》
이 책(하이젠베르크(지음), 김용준(옮김),《부분과 전체》, 지식산업사, 1991.)에서 하이젠베르크는 자연과학 이외의 철학, 종교, 윤리, 정치, 사회 여러 분야들에 대화를 건넨다. 그는, 과학이란 대화와 토론을 통해 비로소 성립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서론에서 미리 밝히듯, 그의 작업은 정신과 과학 사이에 놓여있는 단절을 메우려는 시도 가운데 하나다. 과학이 철학이나 종교, 사회 문제와 분리되거나 그것을 도외시한다면 과학의 성립은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일깨우려 한다. 아인슈타인의 강연장에서 정치적 이해에 휘둘린 한 과학자가 상대성이론에 대한 비난 선전물을 돌리는 것을 목격하고 정치와 과학의 관계에 관해서도 고민한다.
대화와 이해
현대 원자 물리학은 철학적이며 윤리적이고 정치적인 문제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문제점을 던지고 있다. 이런
점에서 가능한 넓은 범위의 사람들이 토론에 참여해주기 바라며, 하이젠베르크는 이 책이 새로운 토론의 광장을 마련하는 데 기여하기를 희망한다.
이를 위해 그가 취하는 방법이 대화다. 소크라테스 이후 지금까지 인류가 고안한 최고의 진리 추구 방법이 대화라는 것에는 이견이 별로 없다.
소크라테스는 대화를 통해, 이른바 산파술을 통해 사람들이 앎에 접근하도록 하였다. 하이젠베르크는 청년 시절 친구와 원자와 분자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플라톤의《티마이오스》편을 떠올렸던 기억을 적고 있다. 거기에는 물질의 최소단위에 관한 철학적 사색(대화)이 담겨 있었으며 그것은
물리학자로서의 실질적인 출발점이었다.
이 책의 근간을 이루는 문제는 ‘앎이란 무엇인가’ 하는 철학적 과제다. 인간의 선천적 인식 능력과 경험적 지식에 관해 지속적으로 묻고 대화한다. 인간이 알 수 있는 것, 즉 인식의 한계는 무엇이며 또 어떤 것을 안다고 할 때 그것은 어떻게 하여 가능한가. 그것은 철학자 칸트의 주된 과제였고 하이젠베르크 또한 칸트의 문제 의식을 깊이 공유하고 있다. 칸트는 우선 물(존재) 자체와 현상을 구별한다.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것은 현상에만 국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여, 자연 과학의 사상적 정초를 마련하였다. 우리가 고양이를 볼 때 우리는 고양이로부터 나오는 광선을 보는 것이며, 만일 털을 쓰다듬는다고 해도 이와 마찬가지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럼 과학자는 이런 물음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럼 원자라는 것이 실재하는 것인가?” 물리학자(과학자)는 어느 시점에서 결국 공간과 시간의 구조, 인과법칙의 타당성 같은 철학적 문제에 봉착할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과학은 철학과 떼놓을 수 없다.
신과학은 언제나 고전과학의 땅 위에서 자란다. 모차르트라는 음악의 왕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이전의 수많은 무명 음악가들이 각 분야에서 수백 년 동안 성실히 자신의 과업을 수행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예술에서나 과학에서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역사적인 발전과정을 보면 모든 분야에 ‘긴 침묵의 시대’와 ‘천천히 발전하는 시대’가 있기 마련이다. 그 기나긴 침묵의 시대 끝자락에 천재들이 등장하여 새로운 세계를 열었다. 신세계를 열어젖힌 것은 또한 결단과 용기를 지닌 개척자들이었다. 콜럼버스의 위대함은 신대륙을 발견한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당시 항해기술과 지식으로는 출발점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그 지점에서 오히려 더 멀리 서쪽으로 뱃머리를 돌린 결단에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과학에 있어서도 실질적인 신세계는 어느 결정적인 시점에서 지금까지의 과학이 의존하고 있었던 그 토대를 박차고, 말하자면 허공에 뛰어들 각오가 되어 있을 때에만 얻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해’란 무엇인가. 그리스인들에게 이해란, ‘많은 것’을 ‘하나’에 소급하는 일이었다. 이해한다는 것은 그것으로, 굉장히 많은 현상들을 통일적으로 연관된 것으로 인식할 수 있는, 다시 말해서 파악할 수 있는 표상(마음속에 무엇을 떠올리는 것, 감각과 개념 사이에서 일어나는 상기와 상상력과 기억을 합친 것으로 직접적이고 감성적이다)이나 개념(표상에 의해 구성된 것)을 갖는 것이다. 외관상으로는 혼란한 어떤 특수한 상황이 사실은 보다 더 일반적인 것의 특수한 경우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식했을 때 우리의 사고는 안심한다. 이것은 2천5백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개념이다. 그러나 그 개념은 인간 지성의 확장과 더불어 변화한다. 과학의 진보란 단순히 우리들이 새로운 사실을 알고 그것을 이해한다는 데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해한다’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는 것을 항상 되풀이 새롭게 배워감으로써 성취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식의 확장 가능성과 변화 가능성을 닫는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양자이론이 이미 물리학의 확고한 구성요소가 되어버린 지 오래 되었지만 아인슈타인은 평생 자기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하느님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는 주장은 그의 확고한 원칙이었고 그 원칙이 누구에 의해서든 침범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보어는 이런 말을 했다. “하느님이 이 세상을 어떻게 다스리실 것인가를 지시하는 것은 우리들의 과제가 될 수 없다.”
과학과 언어, 과학자의 역할
하이젠베르크와 보어는 어느날 동료 학자들과 함께 포커를 쳤다. 보어가 말했다. “여기서
사용하는 언어는 학문에서 사용하는 것과는 아주 다릅니다. 여기서는 진실을 속이는 게 더 중요합니다. 말은 사람으로 하여금 어떤 상(像)을 그리게
하고 그 표상은 행동을 유발합니다. 냉정한 고찰로부터 도달할 수 있는 추측보다는 속임수에 의해 생긴 표상이 더 강한 법입니다. 이 까닭은
무엇일까요?” 하이젠베르크는 이 날 이후 수백 년 동안 인간의 사고를 결정해 온 표상의 힘에 관하여 생각을 거듭했다.
자연에 대하여 무엇인가를 진술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수학적인 언어를 일반적인 언어로 이행해야 하며, 이것이 자연과학의 과제다. 물질의 최소 단위에 관해 다시 생각해 보자. 데모크리토스의 말은 이렇게 고칠 수 있다. ‘태초에 입자가 있었다.’ 우리는 이 그리스 시대의 표상을 항상 믿어 왔다. 그러나 더 이상 분할할 수 없는 최소의 단위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계속 분할을 해나가면 종국에는 그것은 입자가 아니라 에너지를 물질로 변화시킨 것이 되며, 그때 생긴 입자는 분할된 것보다 결코 작은 것이라 할 수 없다. 그러면 태초에 무엇이 있었단 말인가? 언어와 과학의 관계에 관한 것은 하이젠베르크의 주된 관심사였다. 보어와 하이젠베르크는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실증주의자들의 비판은 무엇보다도 형이상학을 겨냥하고 있습니다. 실증주의자들은, 언어로 진지하게 분석을 시도하면 거기에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증명될 가상적인 문제에 관해서만 우리가 수없는 대화를 늘어놓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하이젠베르크)
“좀 더 극단적으로 표현한다면 종교에서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말에 단 하나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포기하고 있지만, 자연과학에서는 그것이 먼 훗날에는 가능하다는 희망에서, 또는 그와 같은 환상을 갖는 데서부터 출발합니다. 사람들은 ‘삶의 의의’를 말하면서도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모릅니다.” (보어)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삶의 의의는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아마도 그것은 하나의 상(像)일지도 모르며, 하나의 의도 또는 하나의 신뢰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그 어떤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옛날 중국에서 ‘도(道)’라는 개념이 철학의 정상에 있었고, 이 ‘도’라는 말은 거의 비슷한 뜻으로 번역되지 않습니까.” (하이젠베르크)
“ ‘도’라는 말이 본래 무엇을 뜻하는지를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지 않소? 옛날 중국에 식초를 맛본 세 철학자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하오. 첫 번째 사람은 ‘시다’, 다음 사람은 ‘쓰다’, 다른 사람은 ‘신선하다’.” (보어)
하이젠베르크와 보어는 며칠 뒤 다시 포커를 했다. 이들은 패를 속이는 허풍 수법 – 속된 말로 ‘뻥카’라 불리는 – 에 관한 실험을 다시 해보기로 했다. 대신 바닥에 패를 전혀 깔지 않고 시도하기로 했다. 실험은 바로 중단되었다. ‘뻥카’가 도무지 설득력이 없었다. 보어는 이렇게 정리했다. “패를 깔지 않고 손에 카드를 모두 쥔 상태에서 허풍을 쳐보자는 제안은 아마도 우리가 언어의 힘을 과대평가한 데서 나왔을 겁니다. 언어는 실제와의 결합에 의존합니다. 진짜 포커에서는 어쨌든 카드 몇 장이 반드시 탁자 위에 놓입니다. 이때 언어(허풍)는 한 상(像)이 실제적인 한 부분을 보완하는 데 사용됩니다. 그러나 언어가 전혀 실제와 동떨어져서 출발한 때에는 다른 사람을 믿게 할 만한 암시를 주기란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하이젠베르크는 이런 잠정적 결론을 내렸다. 입자와 파동이라는 고전적 언어로 양자 역학을 설명해야 하지만, 그 실제를 모두 설명하기엔 적합하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일상 언어로 그것을 기술할 수밖에 없으며, 그때 우리는 비유에 의지하거나 외견상의 역설과 모순을 일정 부분 감수해야 한다. 우리는 그것을 역사를 통해 배웠다.
1945년 8월 어느 날,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었다는 사실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왔다. 하이젠베르크의 회고에 따르면, 동료 물리학자 오토한은 이 소식을 듣고 거의 자살 직전의 충격에 휩싸였다고 한다. 하이젠베르크는 다음 날 발견자와 발명자의 차이에 관해 칼 프리드리히와 대화를 나누었다.
“갈바니와 볼타는 후세의 전자 기술에 대하여 아무 것도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후세에 온 이익이나 위험은 그들 책임이 아닙니다. 핵 분열을 발견한 사람은 원폭 투하의 책임이 없습니다. 그러나 원자 폭탄을 발명한 사람은 다릅니다. 그 목적에 응분의 책임이 따라야 합니다. 발명자는 한 개인이 아니라 인간공동체의 위임 아래에서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연구 활동에서, 커다란 사회 연관성 안에서 사물을 생각해야 합니다. 미국의 원자물리학자들은 정치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 너무 소극적이었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원자폭탄의 역효과를 연구 초기부터 이미 충분히 알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거대한 연관성에 관해 토론하고 고찰하는 것은 과학자들의 임무다. 하이젠베르크가 이 책의 서문에서부터 끝까지 줄곧 강조하는 토론과 대화의 중요성은 바로 이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사이언스타임즈> "블로거의 과학고전 읽기")
http://readmefile.net/blog/archives/000774.html